우리국민은 직지(直指)를 찾는데 적극 동참해야한다. 이 직지는 우리민족의 성예와 위상을 세계만방에 드높인 세계 최초(1372ㆍ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70년 앞섬)의 금속활자에 의해 인쇄된 서적이기 때문이다. 이 직지는 고려때(1372) 백운화상이 지은 책으로 직지심체라고도 하며,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하권이 전시되어 있는데 1972년에 있었던 ‘세계도서관의 해’에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고 유네스코의 공인을 받았다. 따라서 우리민족의 성예와 위상이 높아졌다.

역사는 슬퍼도 문화는 찬란한 나라, 구한말 풍운이 어수선했던 당시 세계열강은 한국의 약세를 틈타 갖은 이권을 강요했었다. 이 때 주한 프랑스 대리공사 골랭드ㆍ뿔랑시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때 많은 문화재를 갖고 갔는데, 직지심체 하권도 딸려갔다. 그러면 직지심체 상권은 국내 어딘가에 묻혀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온 국민이 세심한 주의로 묻혀있는 직지를 찾는데 적극 동참해야할 뿐만 아니라 이 계제에 우리의 묻혀있는 귀중한 고전도 함께 찾아야한다. 시간이 늦으면 늦을수록 어렵기 때문이다.

본문의 주제가 책을 찾는 것이니만큼 이에 관련해서 칠서벽경(漆書壁經)이라는 고사(故事)를 적어 보려한다.

옛날 중국 춘추시대 노 나라의 공왕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두메산골 언덕 밑에 다 쓰러져가는 고가가 한 채 있었다. 그런데 이 집에서 밤이면 쿵쿵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놀라게했다.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공왕때 와서 이런 변괴가 나타났다. 동네사람들은 이 집에서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지나 않을 까 걱정이 되어 모두 모여 상의한 끝에 마침내 집을 헐기로 했다. 그래서 지붕을 뜯고 벽을 헐고 내실로 들어가보니 뜻밖에 번득한 궤짝하나가 방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호기심에 찬 동네 사람들은 더욱 이상하게 여겨 궤짝 문을 열고 보니 이 웬일인가. 그 속에서 뜻밖에도 유교의 경전이 가득 들어있지 않은 가. 그야말로 진흙속에서 보물을 찾은 셈이다. 그리하여 이 일을 가리켜 칠서벽경이란 고사가 생겼다. 칠서벽경, 옻으로 쓴 귀중한 경서가 벽 속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이 고사를 좀더 자세히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 나라의 폭구 시황제는 무력으로 중국의 여러 왕국을 정벌하고 비로소 중국을 통일했다. 진시황의 폭정이 너무 가혹했기 때문에 당시의 사상가나 문인학자들은 진시황에 대한 비난이 없을 수 없었다. 진시황은 이 비평세력을 막기위하여 많은 책을 불사르고 학자들을 구덩이에 파고 생매장했다. 이 비참한 난리를 분서갱유라 하는데 이 난리가 있을 것을 300년 전에 미리 알아챈 공자는 자기집 안방에 경서를 감췄고 300년 후에 빛을 볼 것을 예상했다. 이러한 결과 많은 경서가 잘 모면이 되어 과연 300년 후엔 노나라 공왕에 이르러 공자의 고가에서 발견되었으니 직지를 찾는 우리에게 힘을 주고 있다.

우리의 직지심체도 어디선가 우리의 손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늦으면 늦을 수록 어려운 일이니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이를 찾는데 줄기찬 노력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문화재는 결코 멀고 높은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우리 생활주변에서도 찾을 수 있다. 경상도 의성의 어느 산골에 있는 고가에서 뜻밖의 훈민정음 원본이 발견되어 학계를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우리들 기억에 생생하다. 문화재를 애호하는 국민여러분에게 타산지석이 되었으면 한다./김동대 영동향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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