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광규 충청북도교육연구정보원장

몇 년 전 수학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수행여행 지에는 안전 요원들이 있어 학생들이 도착하면 간단한 주의 사항과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는 내용 등에 대한 설명한 다음 학생들을 안내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여러 명의 안전 요원 중 경력이 많은 안전 요원이 능숙한 말과 행동으로 아이들의 시선과 관심을 사로잡아 분위기를 다잡는다.

그날도 한 안전 요원이 모든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외쳐 관심을 끌었다.

"오늘 가위바위보로 나를 이기는 모든 사람에게 5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 주겠습니다." 자신있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한 두 번 해 본 것이 아니다. 아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이스크림을 사 준 적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안전 요원의 자신 만만함이 아이들의 도전감을 자극했고 바로 게임이 시작되었다.

180여 명의 학생들이 이겨보려고 나름 꾀를 내어 손을 내밀었지만 한숨과 탄식 소리뿐 결과적으로 안전 요원을 이긴 학생은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의 끈질긴 성화에 못 이겨 세 번 가량 다시 했지만 누구도 안전 요원을 이긴 학생은 없었다. 안전 요원은 의기양양했고 아이들은 모두 실망하여 포기하고 말았다.

더워지기 시작한 봄날에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기대하며 참여했던 아이들의 낙심천만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알면 여러 분 중의 일부는 오늘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도 있어요. 왜, 180명의 학생이 한 사람을 이기지 못했을까요? 그것도 세 번씩이나!"

각자 이길 수 없었던 이유를 말했지만 진실을 알고 말한 학생은 하나도 없었다.

우선은 규칙다운 규칙이 없었다. 그냥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는 사람이라는 규칙이 있었지만 이는 안전요원이 일방적으로 정한 규칙이었다. 그것은 공평한 규칙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기만 알고 있는 불공평한 규칙으로 모든 학생을 이길 때까지 가위바위보를 계속한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규칙이 불공평한 것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뒤늦게 이기는 시점의 가위바위보의 횟수를 정하지 않아 불공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180명의 아이들이 자신들을 속였다며 다시 하자고 난리를 쳤다. 결국 다수 학생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안전 요원은 울며겨자먹기로 얼떨결에 세번까지 하기로 정하고 다시 가위바위보를 했다. 20여 명의 아이들이 기분 좋게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정광규 충북교육정보원장.<br>
정광규 충북교육정보원장.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 문제를 아이들과 좀 더 토론했다. 공평한 규칙 정하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다수의 힘으로 정한 세 번은 안전 요원에게 공평했는가?

그날의 사건이 결코 유쾌하지 못했던 것은 규칙을 정하기에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한 사람이 횟수를 자신이 이길 때까지 정한 것도 문제이지만 여러 사람이 다수라는 힘으로 한 사람의 불리함을 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여 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날의 아이스크림 먹기 가위바위보는 180명이 참여했기에 확률로 따져 다섯 번 정도가 공평했을 것이다. 그러나 승패를 단순히 횟수로 정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규칙을 만들기 위해서는 횟수에 관계없이 마지막까지 남은 몇 사람만 사 주겠다라고 정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런 합리적인 규칙 정하기로 안전 요원은 마음 졸이지 않고 기분 좋게 두 세명의 학생에게 아이스크림을 보상으로 사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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