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견(名犬)은 함부로 짖지 않는다
명견(名犬)은 함부로 짖지 않는다
  • 김강중 기자
  • 승인 2019.05.2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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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중 칼럼] 국장 겸 대전본부장

요즘 정치인들의 도를 넘는 막말이 우리 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

세월호 막말과 5·18 망언이 그렇다. 여성 원내 대표의 '문빠, 달창(娼)'은 분별없고 거북하다. 아나운서 출신 의원은 '×같은 ××야'란 욕설을 해댔다.

야당 대표는 또 다른 야당 대표에게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여권도 다름 아니다. 여당 대표의 '너 한번 나한테 혼나볼래'하는 으름장도 도긴 개긴이다. 여권 실세들은 자신의 무능을 공직사회로 돌리는 뒷담화도 놀랍다.

동종 업계 간, 동성 간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 뜨악하고 저열하기 짝이 없다.

말들이 너무나 험해서 면책특권을 부여해도 이해하기 힘들다. 시정잡배나 다를 바 없다. 국민 정서에도 해로운 만큼 '국해(國害)의원'이라 조롱받을 만하다.

이들은 100가지도 넘는 특혜와 면책특권에 취해 있는 듯하다. 그러니 국민과 법을 무시하고 막말을 해대는 것이다. 세상이 격절스럽게 변하는 데도 조금도 변할 기미조차 없다.

이런 불감은 국회뿐 아니라 권력과 재벌 기득권층 전반에 드리워져 있다.

자고나면 권세와 돈의 위세를 부리다 망가지는 군상들로 넘쳐난다. 전 정권도, 과거의 숱한 갑질이 이 범주에 속한다. 또한 모녀가 입을 놀리다 어려움을 겪은 한진그룹도 이러한 경우가 될 것이다. 세치 혀가 살벌한 사회를 만들고 자신도 죽이는 것이다.

무릇 말이란 그 사람의 인격이고 영혼이다. 말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의식과 철학이 묻어난다.

정치권의 폭언은 무엇보다 그들 간 이해충돌 때문이다. 밥그릇 싸움에 이성을 잃고 핏발 선 말들이 난무한다.

'동물국회'이니 개에 비유한다면 견강부회가 될까. 필자는 대형견 두 마리를 기르고 있다. 오랜 경험이지만 명견(名犬)은 함부로 짖지 않는다. 짖어야 할 때와 짖지 말아야 할 때를 안다.

정치인들의 쌍스런 언행을 볼 때마다 잡견이 떠올려진다. 개가 겁을 먹으면 마구 짖는다. 그들도 자신의 무능과 나약을 감추기 위해 개처럼 짖어대는 것은 아닐까.

조폭들이 폭력과 폭언으로 센척하며 갈취하는 이치와 같다. '깍두기'들이 몰려다니는 것도 두려움 때문이다. 거친 말과 떼거리가 위안이 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정치인들도 뱉는 말이 거칠어야 지지 세력이 규합된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김강중 국장 겸 대전본부장
김강중 국장 겸 대전본부장

상대를 공격할수록 조직이 단합되고 지지율도 오르니 막말을 일삼는 것이다. 총선이 일 년도 남지 않은 것도 요인이다. 계산된 막말과 기행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 이면에는 권력에 대한 사생결단 집착때문이다. 정권이 바뀌면 또 다른 적폐를 부를 테니 이보다 절박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들의 광기어린 행태를 보면 이런 해석은 견고해진다. 막말 정치인에게 굳센 낯빛과 단호한 눈빛을 찾기란 어렵다.

역겨운 이들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고통일 뿐이다. 사람은 스므살 까지 부모가 물려 준 얼굴로 산다고 한다. 그러다 50대가 넘으면 살아온 삶의 궤적이 오롯이 표정에 담긴다.

누구나 이순(耳順)이 되면 자신이 만든 얼굴이다. '이순'은 귀가 순해진다는 뜻이다. 남의 말을 잘 듣고 걸림이 없는 나이다. 듣는 것은 '너와 나' 소통을 위해 긴요하다. 정치인은 말로 먹고 사는 직업이다. 말의 책임을 떠나 품격을 잃지 말아야 한다. 선인들은 말은 낮은 음성으로 천천히, 적게 하라고 일렀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의 구업(口業)을 경계한 것이다. 곧 총선정국으로 접어든다. 전대미문의 일들이 국민들을 얼마나 놀라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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