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까지 찾아 눈물 닦아주며 "한 배 타자" 영입 위해 설득

전영선 감독이 선수지도를 하고 있다. /신동빈
전영선 감독이 선수지도를 하고 있다. /신동빈

[중부매일 신동빈 기자] "선수들에게 체육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제13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종합우승' 달성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전영선 충북장애인체육 육상종목 감독은 지난 2017년 충북과 연을 맺었다. 과거 촉망받는 창던지기 선수였던 그는 선수 개개인 맞춤형 훈련을 통해 장애인 육상종목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저는 16살 어린 나이에 최연소국가대표로 선발됐지만 환경적응에 실패하며 내리막길을 걸었어요. 선수로서는 실패했지만 그때 경험이 지도자 길을 걷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선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거죠"

하지만 장애인체육 지도자로 나선 그의 도전은 쉽지 않았다. 2년 전 충북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체육대회를 앞두고 감독직을 맡았지만 제대로 된 선수구성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충북에서 열리는 대회이다 보니 성적을 내야한다는 압박감이 엄청났어요. 그래서 선수구성부터 하나하나 제대로 시작해보자 마음먹었습니다"

전 감독은 그 길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애인선수들을 만나며 선수영입에 나섰다.

"대전에 사는 한 선수에게 연락해 내가 찾아갈 터이니 직접 만나자고 말했어요. 그런데 그 말을 믿지 않더라고요. 장애인 선수 대부분이 전국체전 때만 찾아진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독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집까지 찾아와줄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거죠"

전 감독의 방문을 놀라워하던 선수는 진심어린 설득에 마음을 열게 된다.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진짜 운동선수로서 한 배를 타자고 설득했어요. 그러자 놀랍게도 갑자기 그 선수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진짜 그게 가능하냐고 묻더라고요. 장애인 선수의 서러움이 느껴졌어요"

제13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육상종목 우승을 이끈 전영선 감독. /신동빈
제13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육상종목 우승을 이끈 전영선 감독. /신동빈

첫 선수 영입에 성공하자 일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전 감독의 이러한 일화가 알려지면서 타·시도 우수선수 7명이 충북 행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현재 충북 장애인 육상 선수는 90여명(일반·학생)에 달한다. 경기도나 서울과 비교해도 부족함 없는 선수층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전 감독의 노력으로 충북육상은 올해 열린 전국장애인학생체육대회에서 55개(금25·은·17·동38)의 메달을 획득한다. 이는 충북 전체 메달획득 수(146)의 30%가 넘는다.

"장애인 체육종목은 경기 당시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들을 어떻게 리드해주느냐에 따라 기록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충북은 저 혼자 선수들을 관리하다보니 힘든 점이 많았어요. 같은 시간 운동장 이곳저곳에서 경기가 열려 코칭을 제대로 못할 때가 있어요. 어느 날은 세 경기가 동시에 열렸는데 여자 포환던지기에 출전한 선수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보였어요. 트랙종목 지도를 하면서 마음이 급해졌죠. 다행히 마지막 시기를 앞두고 다른 종목이 종료돼 미친 듯이 뛰어가서 선수를 지도했죠. 그러자 선수가 경기를 뒤집고 금메달을 따줬어요. 정말 소름 돋는 순간이었죠"

이어서 그는 훈련과정에서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더 감사하다고 전했다.

"다리와 팔, 언어, 시각, 정신적인 부분 등 다양한 유형의 장애선수가 있어요. 그러다보니 선수 맞춤형 훈련을 지도하지 않으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행히 제 눈에 선수의 단점이 잘 보이고 그에 대한 처방을 하면 선수들이 잘 따라와서 고마울 뿐입니다"

선수들이 고된 훈련과정을 이겨내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가장 행복하다는 전 감독은 장애학생들이 스포츠를 통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세상에 나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는 어렵게 첫발을 내딛은 친구들이 편견 없는 시각 속에서 살길 바라고 스스로 당당해지길 희망합니다"

계절 바뀌는 줄 모르고 살 정도로 선수들에게 집중하고 있는 전 감독의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모든 기운을 선수들에게 쏟다보니 저 자신을 돌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제 좀 덜 해야지 하는데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되니 놓지를 못하겠어요. 또 이시종 충북지사께서 장애인 체육에 무한한 애정을 쏟고 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감독으로서 볼 때 엘리트 체육 못지않은 지원과 격려를 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앞으로도 충북 장애인체육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서 장애인 체육인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다음은 제13회 전국장애인학생체육대회에 출전한 육상 선수 39명 명단

한빛나(여자 DB 400m·800m), 최종란(여자 F20 원반던지기·창던지기), 허고은(여자 F32 원반던지기·포환던지기), 엄신희(여자 F37 원반던지기·포환던지기), 오기선(여자 F55 창던지기·포환던지기), 황진우(남자 DB 원반던지기·포환던지기), 김기민(남자 F33 원반던지기·포환던지기), 김영웅(남자 F20 포환던지기), 김민(남자 T37 100m·200m), 서나영(여자 F20 원반던지기·창던지기), 송윤서(여자 F34 원반던지기·포환던지기), 김유진(여자 F34 원반던지기·포환던지기), 최재현(남자 F35 원반던지기·포환던지기), 양선우(남자 F33 원반던지기·포환던지기), 이우원(남자 F33 원반던지기·포환던지기), 박하은(여자 T20 800m·1천500m), 이예림(여자 BT12 100m·200m), 김민주(여자 DB 100m·200m), 신소망(남자 DB 100m·200m), 김세진(남자 DB 400m·800m), 김대용 (남자 T35 100m·200m), 김민지(여자 DB 400m·800m), 정경훈(남자 DB 높이뛰기·멀리뛰기), 서은지(여자 DB 원반던지기·창던지기), 진건우(남자 F35 원반던지기·포환던지기), 박세희(여자 T20 100m·멀리뛰기), 김태식(남자 F12 원반던지기·포환던지기), 공성배(남자 T20 800m·1천500m), 이연서(여자 T37 100m·200m), 이주은(여자 DB 100m·200m), 황정하(남자 DB 100m·200m), 현준환(남자 DB 100m·200m), 이상민(남자 F13 원반던지기·포환던지기), 조아름(여자 F38 포환던지기), 박유영(여자 F37 원반던지기·포환던지기), 안수정(여자 F37 원반던지기·포환던지기), 박성우(남자 F20 원반던지기·포환던지기), 박서현(여자 T20 800m·1천500m), 서은소(T13 여자 100m·2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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