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가마 전통 그대로 고집하고 깊고 진득한 삶

이숙인 도예가.

[중부매일 윤여군 기자]"사람은 30여도를 조금만 넘기면 덥다고 아우성치지만 불을 만난 흙은 1300여도의 뜨거움을 견디고 무언가 담을 것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옥천군 군북면 소정리 낮은 산자락에 자리 잡은 '옥천요(窯)'에서 도자기를 굽는 담월(潭月) 이숙인(72) 여류도예가는 전통 '차그릇'에 조예가 깊다.

차그릇은 '말차'를 마시는 전통다례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옥천요에서 만든 차 그릇은 차잎을 우려낸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찻잔과 크기와 형태가 전혀 다르다.

얼핏 보면 마치 국그릇과 흡사하지만 전통방식의 투박하고 은은한 멋은 '말차'의 풍미를 더해 준다.

차그릇은 이숙인 도예가의 인생을 바꾸었을 정도로 인연이 깊다.

차를 마시다 마음에 드는 차그릇이 없어 직접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도예가의 길을 걷게 했다.

1970년대부터 대전 은행동에서 동호인 몇몇과 어울려 차그릇을 만들기 시작한 이숙인 도예가는 전통도예를 배우기 위해 문경의 '도천' 천한봉 선생과 인간문화재 김정옥 선생을 찾아 갔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전수할 수 없다며 거절당했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천한봉 선생의 마음을 움직여 전통도예를 전수 받아 지금의 맏제자가 됐다.

옥천군 군북면 소정리 옥천요 전경

또 인간문화재 김정옥 선생으로부터 "가마터를 보면 가마를 묻어주겠다"는 허락을 받아내 지금의 옥천요 터에 6봉우리 3칸의 전통 장작가마를 완성했다.

"도자기는 나의 전부다"라는 이숙인 도예가는 "나무는 3년을 말리고 흙도 삭아야 그릇의 질감이 부드러워 지기 때문에 도예는 끝없는 기다림이 연속이다"라고 말한다.

옥천요 뒤편에는 10년 묵은 흙이 있을 정도로 도자기의 생명과도 같은 흙을 중시한다.

옥천요는 오부점토를 사용한다.

흙은 좋기로 소문난 경남 산청과 충남 태안 등지에서 직접 받아와 톳물을 받는다.

곱게 빻은 흙을 물속에서 가라앉혀 수없이 반복해서 톳물을 체로 받쳐 내 알갱이가 고운 입자만 모아 도자기의 원료로 사용한다.

반죽된 흙을 물레에 놓고 성형하는 것부터 초벌구이, 문양 넣기, 유약 바르기, 재벌구이까지 전통 그대로의 방식대로 진행된다.

전통도예는 흙의 배합에서 나온다는 이숙인 도예가는 "천한봉 선생으로부터 바로 그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이숙인 도예가의 작품들

그의 작품은 투박스럽지만 은은하며 고급스러워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전통의 멋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 때문에 이곳에는 유명인들이 소장하고 싶은 그릇을 집에 가져가지 않고 옥천요에 보관하고 가끔씩 찾아와 말차를 마시며 삶을 논한다.

이숙인 도예가는 연간 3천여개를 제작해 1년에 4번 전통가마에서 굽는다.

지난 5월 올해 두 번째로 옥천요 여섯 봉우리 세 칸짜리 전통 장작 가마에 불을 지폈다.

장작 가마에는 50일 동안 빚은 다완, 화병, 굽접시 등 작품 1200여 점이 들어갔다.

이숙인도예가가 도자기를 전통가마에서 초벌구이를 하고 있다.

이날 작업은 초벌구이다. 가마 온도는 800~900℃로 이 안에서 대략 5~6시간 정도 구워지면 성형된 흙이 가지각색으로 변한다.

화력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가스나 전기가마와 달리 온도와 바람 등에 영향을 받는 전통 장작가마에서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색이 나온다.

이런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그릇의 질감과 색채 때문이다.

이숙인 도예가는 "화력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가스나 전기 가마와 달리 장작 가마는 온도, 바람 등 외부 조건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가지각색의 도자기들이 탄생한다"고 말했다.

6봉3칸의 전통가마
 

가마에서 구워진 자기를 모두 꺼내 겉에 묻은 재를 털고 유약을 바른 다음 재벌구이를 위해 또다시 가마에 차곡차곡 쌓고 가마 온도는 1200~1300℃까지 올린다.

이때는 화력을 좋게 하기 위해 3년 이상 건조된 소나무만을 사용한다.

흙이 불을 만나 불의 온도와 바람 등에 따라 다양한 색을 내는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도자기가 탄생하게 된다.

지난 2002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스승인 천한봉 선생과의 사제 간 전시회를 시작으로 지난해 대전 고트빈갤러리 모자 전시회까지 19회의 작품 전시회를 가졌다.

또 2015년에는 경기도교육감이 인정한 중학교 2학년 미술교과서에 그의 이름과 작품 '연잎 5인 다기'가 실리기도 했다.

또. 미국 뉴저지 F.G.S 갤러리 초대전, 미국뉴욕 SPACE WORLD 갤러리 초대전, 일본 교토 소무시 갤러리 개인전, 한중 도자기 명인 100인전, 중국 경덕진 국제세라믹 페어 참가, 일본 도쿄 신주쿠 게이오백화점 모자전을 열었다,

관련특허도 연잎다기 관련 의장등록 총 6건을 등록했고 다기상 관련디자인 등록 1건과 유골함 관련 특허 등록을 출원했다.

아들 최석호 도예가가 전통가마에 불을 지피고 있다.

그의 외아들 도당 최석호(48) 도예가가 전통도예를 전수받아 모친과 함께 '옥천요'를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모친의 곁에서 고교때부터 가마에 불을 지폈던 최석호 도예가는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오사카 예술대학교 부설 오사카 미술 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졸업제작전에서 졸업제작상을 받을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나 제21회 대전광역시 미술대전에서 특선, 제14회 전주 전통고예 전국대전 특선, 대한민국 남북통일 미술대전 특선을 수상했다.

최석호 도예가는 "가마안에 무엇이 담길지 아직은 모른다"고 말한다.

"그것이 꽃일지, 생명일지, 마음일지, 사랑일지...". 도예의 매력에 빠져 모친 이숙인 도예가와 함께 그릇을 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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