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난영 수필가

열정과 감흥의 멋진 난타 공연이 끝나고, 천연염색 패션쇼가 시작되었다. 자연에서 찾은 빛깔 고운 우리 색, 누구에게나 잘 어울린다. 모델 버금가는 럭셔리한 모습에 미소가 번진다. 고운 모시 한복을 입은 출연자는 단연 돋보였다. 쪽 찐 머리에 군청색 치마와 하늘색 저고리, 짙푸른 숄까지 전통적이며 예스러움이 정겹다. 여체의 신비를 숨긴 듯한 단아한 옷매무새가 한복의 매력을 더해준다. 우아한 고전미와 현대적 색감에 감탄하며 다시 보니 어머니 모습이 오버랩 된다.

어머니 생각만 하면 애잔하다. 어머니는 관직에 계셨던 두 가문의 할아버님들 약조에 의해 산골로 시집을 왔단다. 청주의 내로라하는 집안의 따님과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괴산 산골 총각의 결혼,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시집와서 보니 하늘만 빠끔히 보이는 데다 매일 끼니까지 걱정해야 했다니 얼마나 어이없었을까. 일제 강점기 때 배고픔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 어디 있었을까마는 산골이니 더했을 듯싶다.

부지런한 어머니 성격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삯바느질을 시작하셨단다. 대갓집 규수답게 음식도 잘하고, 바느질 솜씨도 뛰어나 누비 바지저고리에 마고자까지 못 하는 것이 없었으나, 정갈한 성품이 그대로 나타나는 모시옷 만드는 것은 단연 으뜸이었다고 한다. 타고난 솜씨에 지혜와 덕을 갖춘 어머니는 읍내까지 소문이 나서 밀려드는 일감으로 밤을 낮 삼아 일해도 입에 풀칠하는 정도였단다.

가난을 벗어나는 길은 자식 공부시키는 길뿐이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굶기를 밥 먹듯 하며, 60년대 산골에서는 보기 드물게 아들들 대학까지 보냈다. 자녀들 앞날을 환하게 밝혀준 어머니의 희생을 되새기며, 내 삶을 되돌아본다.

세월이 흘러도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있는 어머니는 가만히 계시질 않았다. 30년쯤 되었지 싶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면 적적하실 것 같아 소일하시라며 모시 한필을 사다 드렸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면서 젊었을 적 솜씨를 발휘해 자녀들의 개량한복을 아주 맵시 있게 만드셨다.

연세가 있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놀랄 만큼 훌륭한 솜씨에 감탄했다. 자신감을 얻은 어머니는 흰색 모시 원단을 떠다 직접 염색까지 하셨다. 청색, 보라색, 하늘색, 다홍색 등 곱게 물을 들여 유명 패션디자이너 못지않은 디자인에 정성까지 곁들였다. 옷이 밋밋하다 싶으면 수예점에 가서 예쁜 자수까지 놓아다 주셨다.

자녀들이 만족해하니 재봉틀 앞을 떠나질 않고, 이것저것 만드셨다. 재봉틀 앞에 앉아서 모든 시름 다 잊으시고 열심히 바느질하는 모습은 팔십 노인이라도 아름다웠다. 다른 분들 같으면 당신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드실 텐데 하는 생각에 그저 고맙기만 했다.

모시옷은 정성으로 지어 기품으로 입는다고 한다. 어머니가 사랑과 정성으로 만들어 주신 모시옷을 입고 직장엘 가면 행동까지 조신해지니 직원들이 우아하고 품위가 있다고 중전마마라고 불렀다. 어머니의 훌륭한 바느질 솜씨는 문학에 소질도 없는 내게 '시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라는 글을 쓰게 만들었고, 라디오에 방송되는 영광도 주었다.

모시는 모시풀 껍질의 섬유로 짠 옷감으로서 질감이 깔깔하고 촉감이 차가우며, 빨리 말라 여름철 옷감으로 많이 이용된다. 충남 한산에서 생산하는 세모시는 우리나라의 미를 상징하는 여름 전통옷감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불볕더위에 잠자리 날개처럼 얇으면서 시원한 바람이 통과하는 모시옷을 입고 있으면 나도 시원하지만, 보는 사람도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혹자는 에어컨 옷이라고도 하는데 손질은 어려우나 입어보면 시원하고 상큼해 맞는 말이지 싶다.

어머니는 체신은 왜소했으나 옷맵시가 좋으셔서 어느 옷을 입어도 태가 났다. 그중에서도 모시옷이 가장 잘 어울리셨다. 아래위 하얀색 세모시나 푸른색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으실 때는 참으로 고우셨다.

어머니는 자녀들 옷뿐만 아니라 다니시는 절의 스님 장삼부터 이웃 노인들의 수의까지 만들어 주셨다. 왜 힘들게 그러시냐고 하면, 사정이 여의치 못해 수의도 장만 못 한 노인들에게 재능기부 하는 것도 보시하는 것이라며, 기꺼운 마음으로 밤잠까지 설쳐가며 만들었다.

칠남매 모두에게 모시이불도 만들어 주셨다. 정성 들여 만들어 수예점에서 예쁘게 자수까지 놓아서 말이다. 모시이불을 끝으로 애달프게도 병환이 나셨다. 90세에 영면하실 때까지 8년 동안 누워 계시면서도 재봉틀을 옆에 끼고 있을 정도로 바느질, 아니 모시에 대한 애착이 강하셨다.

어머니와 함께한 27년, 어머니가 가장 행복해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손주들과 함께할 때와 재봉틀 위에서 모시와 함께하실 때로 기억된다. 우리나라의 미를 상징하는 여름 전통옷감 모시는 알게 모르게 어머님의 자존심이고 사랑이고 행복이 된 것이다.

이난영 수필가

어머니의 유품이 된 모시이불, 차마 덮지 못하고 어머님 뵙고 싶을 때 가끔 꺼내 보며 그리움을 달랬었다. 엊그제 인생 3막을 끝내고 돌아온 남편을 위해 21년 동안 고이 간직했던 모시이불을 꺼냈다.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 희망, 행복, 바람을 덮어본 남편, 따뜻한 어머님의 사랑이 느껴진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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