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인문학]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구기스포츠는 축구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400여년전 것으로 추정되는 허벅지로 축구공을 다루는 아테네 청년의 모습이 조각된 묘지석 유물이 있다. 이 축구하는 모습은 현재에도 유럽챔피언리그의 우승 트로피에 장식되어 있다. 또한 동양에서는 중국 둔황에서 2천여년전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털을 뭉쳐 만든 축구공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유물들을 보아 오래전부터 공을 발로 차는 놀이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축구와 같은 공놀이로 로마의 하르파스톤이 있었다. 14명씩 두 팀으로 나누어 직사각형의 광장에서 하프라인에 흰색 선을 표시하고, 각 팀의 뒤에도 선을 표시해 골라인으로 활용했다. 특이한 점은 손도 사용이 가능해 현재의 럭비와 유사했다. 하르파스톤은 로마시대에는 군사경기로 널리 보급되었고, 로마가 영국을 침공하였을 때 이 경기를 보급시켰다고 해 영국 축구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축구경기는 217년 영국에서 개최된 것으로 로마군의 공격을 막아낸 것을 기념해 축제로 개최된 경기다. 그리고 축구의 연례행사가 시작된 것은 1천여년뒤 1175년 영국에서 개최된 축구경기다. 세계 최초의 아마추어 축구 클럽은 1857년 영국의 사립학교 졸업생들이 창단한 셰필드 FC로 이를 발판으로 셰필드 FA가 1867년에 창립되었다. 셰필드의 창단은 원시적이던 당시의 축구를 현대 축구로 발전시키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축국협회와 규칙을 만들어 축구의 성문화에 기폭제역할을 하게 된 것은 1862년 노팅엄에서는 세계 최초의 프로 축구팀인 노츠카운티 FC가 창단되면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잉글랜드축구협회의 규정을 기반으로 국제축구연맹(FIFA)이 1904년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되었다. 세계적인 메가이벤트로 발전한 FIFA 월드컵은 1930년에 시작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이러한 유럽의 축구역사가 있음에도 FIFA는 가장 오래된 축구의 형태를 '축국(蹴鞠)'으로 정의하고 있다. 축국은 동양에서 오래전부터 유행한 공차기 놀이이다. '삼국사기' 김춘추전에는 김춘추와 김유신이 유신의 집 앞에서 축구를 통해 김춘추가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와 결혼을 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이외에도 신라사람들은 축국을 '농주(弄珠)놀이'라고 부르며 대중화된 놀이였으며, '구당서' 동이편에는 고구려인들도 축국을 잘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외에도 '수호지'에서는 고구가 원앙이 두발로 차는 듯 화려한 공다루기 기술을 보여 황제에게 인정받아 태위까지 차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축국은 중국 황제의 유제라 하였고, 무사의 정신과 체력을 단련하는 연마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이렇다보니 1790년 정조가 발행한 '무예도보통지'에도 '초학기(初學記)에 말하기를 국(鞠)은, 즉 국(毬, 球)자이니 지금의 축국은 구희(球戱)인 것이다. 옛날에는 털을 묶어 이를 만들었고, 지금은 가죽태(소의 오줌통으로 만든 공)로 바람을 불어넣어 이를 찬다'고 하였다.

국내에 유럽의 현대축구가 유입된 것은 구한말이다. 당시에는 발로 공을 찬다는 것 때문에 축구를 축국처럼 했다. 당시 축국은 농구처럼 장대 위의 망 속에 공을 넣으면 점수를 얻는 방식으로 높이 차는 사람이 축구를 잘하는 사람으로 꼽혔다. 사실 구한말의 축구기록들을 보면 높이 차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FIFA 랭킹 37위지만 간혹 주요경기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다. 고대 병사들의 전투력 향상과 대중들의 놀이, 그리고 무인들의 연마수단으로 축국을 즐겼고, 구한말 유럽의 축구를 유입한 것이다. 지금 세계를 누비는 우리 축구선수들의 유전자는 이미 고대사회 축국에서부터 이어져 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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