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作 쌍계계곡
장영주 作 쌍계계곡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산세와 위치를 살펴 팔도의 기준을 매겼다. 조선시대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기준점, 곧 랜드마크를 세운 셈이다.

호서(湖西)는 충청도로서 충북 제천 의림지호(義林池湖)의 서쪽이고, 호남(湖南)은 전라도로서 전북 김제 벽골제호(碧骨堤湖)의 남쪽이며, 영남(嶺南)은 경상도로서 조령(鳥嶺) 죽령(竹嶺)의 남쪽이고, 강원도(江原道)를 영동(嶺東) 관동(關東)이라 함은 대관령 동쪽이며, 해서(海西)는 황해도로서 경기해의 서쪽이고, 관북(關北)은 함경도로서 철령관(鐵嶺關)의 북쪽이며, 관서(關西)는 평안도로서 철령관의 서쪽이라는 뜻이다.

경기는 임금의 궁전을 중심으로 함으로 기준점이 따로 정하지 않은 듯하다.

호서지역의 아름다운 계곡으로는 화양계곡과 선유계곡이 있다. 속리산에서 머지않은 곳에 괴산군의 화양동 계곡이 나온다. 박대천의 지류인 화양 구곡이 있고 그 상류 삼송천에는 퇴계 이황이 도취되었다는 선유동 구곡이 있다. 아홉(九)은 가장 큰 숫자를 상징하니 안동에는 도산구곡이 있다. 유난히 삼(三)을 좋아 하는 우리민족은 3의 3배수인 9를 가장 신성 시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양동에 은거하였던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이 중국의 무이구곡을 본받아 화양 9곡의 이름을 지으니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곶이다. 또 주자의 운곡정사를 본떠서 집을 지었고 제자 권상하에게 명나라의 신종황제 사당을 세우라고 유언으로 만동묘(萬東廟)라고 불리 운다. 선조의 어필 '만절필동(萬折必東)'의 앞 뒤 글자를 딴 이름으로 '황하는 만 번을 꺽여도 결국 동해로 흘러든다'는 의미이나 속뜻은 어떤 상황에서도 명나라 황제에 대한 마음은 변 할 수 없다는 충성서약인 것이다. 중국의 황제를 등에 업고 조선왕의 어필을 바위에 새겨놓아 호가호위하는 갑질이 얼마나 자심했는지 대원군도 쫓겨 날 정도이니 웬만한 선비는 그저 주눅이 들 수밖에 없을 터. 멀리서부터 양손을 아래에 공손히 맞잡고 운신해야 하니 '좆 잡고 화양동 간다'는 비아냥 꺼리 속담이 생겼다. 결국 대원군의 사원철폐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 것이다. 지독한 사대주의에 금수강산이 욕을 보고 있었으니 말없는 자연 앞에 그저 씁쓸할 뿐이다.

쌍계계곡 입구와 괴강이 만나는 곳에는 해장에 좋다는 올뱅이 국 집들이 여러 채 있다. 그중에서도 부부가 정성껏 운영하는 강 쪽의 식당은 국산 올갱이만 쓴다고 하여 지날 때 마다 들러 식사도 하고 안부도 묻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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