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독립운동가 한국광복군 총사령 지청천
9월의 독립운동가 한국광복군 총사령 지청천
  • 유창림 기자
  • 승인 2019.09.0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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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복군 총사령 지청천

[중부매일 유창림 기자]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지청천(1888~1957년)을 2019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9월 한 달간 특별기획 전시회를 진행한다.

지청천은 1888년 1월 25일 서울 삼청동에서 태어났다. 관명은 석규(錫奎)이고 아명은 수봉(壽鳳)이다. 군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1908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으나 1909년 9월 통감부의 압력으로 대한제국 군부가 폐지되고 학교도 문을 닫으면서 지청천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914년 5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재임하던 중 1919년 3.1운동 소식을 듣고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이에 국내로 돌아와 남만주로 망명한 그는 서간도 유하현에 있는 신흥무관학교에서 교성대장으로 독립군 양성에 힘을 쏟았다.

1930년에는 한국독립군을 조직하고 총사령에 부임했다. 그러던 중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북만주와 동만주 일대에서 일본군을 상태로 전투를 벌였다. 그중 1933년 6월 중국항일의용군과 연합해 일본군 '간도임시파견대'를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대전자령 전투는 '군수물자 노획'이라는 측면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거둔 최대 성과였다.

이후 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독립전쟁을 위해 중국 관내로 활동 근거지를 옮긴 지청천은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군무장 등을 맡았다. 1940년 9월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으로 창설된 한국광복군에서는 총사령으로 취임했다.

한국광복군을 이끌며 일제와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는 대일항전 구상 아래 병력 확충에 앞장섰고 영국, 미국 등 연합군과 합작 등을 추진했다.

일제의 패망으로 광복을 맞이한 후 1947년 4월 환국한 그는 1948년 5월 총선거에서 전국 최다득표로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됐고 1948년 8월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초대 무임소 장관으로 임명됐다. 이후 2대 국회의원, 국방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던 그는 1957년 1월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평생을 무장투쟁과 독립전쟁에 헌신한 지청천의 공로를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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