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구상에 수많은 인간이 살다가 죽어가지만 일부 특출한 인물을 제외하고는 그 흔적을 남기기가 어렵다. 그런데 우리의 족보는 삼국시대로부터 2,000여년이라는 오랜 세월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역사를 기록하여,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기록 문화를 남겼으며, 조선왕조실록은 임금의 일거수 일투족은 물론 나라의 역사를 세세하게 기록함으로써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외국문자를 빌어서까지 세계적 기록문화를 이루어온 우리 조상들이 한글이라는 우수한 문자를 창제하여 사용했으면서도 역사 기록의식이 매우 빈약하다는 데 대해서는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역사는 기록이요, 발전의 원동력이며, 주인 의식의 원천이다. 오랜 역사를 통하여 중국과 일본은 우리 고조선 역사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왜곡하여 왔으며, 최근에도 고구려 역사 및 근세역사를 왜곡하고자 발버둥치는 이유는 바로 역사를 잃으면 주인의 권리도 잃기 때문에 주인의 권리를 차지하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오늘날 독도 문제로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지만 우리는 무조건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기 전에 우리가 그동안 주인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데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며 대마도나, 만주, 간도 땅을 빼앗긴 뼈아픈 역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할 것이다.

주인 역할이란 관심을 가지고 관리하고 변화의 역사를 기록하여 후대에 이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국가나 단체나 개인이나 주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주인 권리를 빼앗기고 마는 것이 역사의 교훈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학교에는 주인을 찾기가 어렵다. 교장이나 교사가 잠시 근무하다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면 그 흔적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땅 속에 수도관, 가스관이 어디에 묻혔는지, 학교시설과 교육활동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기록도 없거니와 물어볼 주인이 없다.

지난 해 시골의 작은 학교에 부임해 보니 도시의 학교와 매우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1950년 6.25전쟁의 혼란 속에서 자녀 교육의 필요성과, 학교 없는 지역의 설움, 배우지 못한 사람의 설움을 절감한 주민들이 힘을 모아 미군들이 쓰던 천막에 공민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 후 지역 주민의 숙원인 정식 학교로서의 중학교 설립을 위해 각 마을별로 할당금을 나누어 십시일반으로 모금하고 많은 뜻있는 주민들이 대대로 농사를 지어오던 땅을 흔쾌히 쾌척하여 학교 부지를 마련함으로써 1966년 드디어 개교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학교 설립과 자녀 교육을 위한 지역 주민의 피나는 노력이 아무 기록도 없이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있고, 농촌지역 인구가 감소되면서 지역사회의 교육에 대한 열기가 식어지는 느낌이 들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교육은 지역 주민과 학부모의 관심만큼 이루어지며 학생들은 선배들이 남겨놓은 훌륭한 전통과 지역의 환경을 배우며 자라는 것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큰 학교이던 중학교가 오늘날 전교생 56명의 작은 학교로 변하여 지역주민이나 학부모는 물론 교사와 학생들의 의욕과 열의가 적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학교의 찬란한 역사와 전통을 되살리고 과거 지역주민들이 힘을 합쳐 학교를 만들어온 역사 기록을 영원히 보존하며, 앞으로 학교의 발전은 물론 지역사회의 발전과 나아가서는 국가 발전의 동량이 될 훌륭한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서 학교역사관을 만들고 지난 6월 15일 조촐하게 개관식을 가졌다.

또한 정보화시대에 걸맞도록 학교 홈페이지에 사이버역사관도 만들어서 학교의 모든 역사를 정리하고 보관하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학교의 역사를 찾아보고 되새길 수 있도록 하였다.

3년 전인 2002년 태풍 매미가 쓸고 지나간 운동장에 주인 잃은 운동화 사진이 신문에 게재되어 마음을 아프게 했던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선 이 작은 학교는 이제 이 역사관을 통하여 학생들에게 역사 의식을 심어주는 한편 과거의 빛나는 역사와 훌륭한 전통, 그리고 지역주민과 교사, 학생의 주인의식을 되살리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함으로써 신바람 나는 학교를 만들고자 한다.

아울러 이러한 작은 움직임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우리 민족의 역사 의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상촌중학교 교장 이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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