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박현수 (사)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

추석이 지나고 가을이 제법 느껴지는 날입니다. 추석 때 작은 야산으로 성묘를 가다 보면 작은 나무들이 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고약하게도 가시가 가득 달린 나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나무들의 잎을 스치고 지나고 나면 향긋하면서도 이상한 향을 접하게 됩니다. 이 향기의 주인은 산소 주변이나 임도길에 많은 산초나무입니다.

우리나라의 향기를 내는 나무들을 통틀어서 운향과 나무라고 합니다. 특히 열매에서 향기가 나는 나무들이 거의 운향과 나무입니다. 귤, 레몬, 탱자, 초피나무, 산초나무 등이 이에 속합니다. 그중 산초나무가 속해있는 초피나무속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와 함께 해 그 향과 쓰임을 누구나 한 번은 겪어 봤을 것입니다.

산초와 초피는 생김새가 비슷해서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만 기억하면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잎모양입니다. 산초는 잎을 따면 잎 끝이 둥근 반면에 초피는 끝이 가시처럼 톱날이 있습니다. 이래도 어렵다면 줄기에 난 가시를 보면 산초나무 가시는 가지를 중심으로 위아래 어긋나서 달리는데 초피나무는 줄기를 중심으로 가시가 마주 보며 나옵니다. 쉽게 가시가 쌍으로 나오면 초피나무, 하나씩 있으면 산초나무입니다.

두 나무 모두 향이 강해서 오래전부터 다양하게 활용해 왔습니다. 산초는 열매가 익기 시작하면 잎과 함께 따서 장아찌를 만들거나 완전히 검게 익은 씨앗을 들기름과 섞어 산초기름을 만들어 사용해 왔습니다. 초피는 열매의 껍질을 갈아 제피가루를 만들어 음식에 넣어먹었습니다. 경상도에서는 매운탕에 넣기도 하고 여린 잎을 갈아서 나물을 무칠 때 사용합니다. 두 나무의 공통점은 향과 맛이 강해서 향신료로 사용해왔다는 점입니다.

지리산 둘레길 산청과 하동을 걷다 보면 오래된 집 마당에 크게 자란 초피나무를 만나기 쉽습니다. 초피나무를 활용한 요리가 많았기 때문에 집에서 언제든지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상비약으로도 사용했는데 소화를 잘 시키고 해독효과가 있어 약용으로도 재배를 했습니다.

우리나라 외에도 일본과 중국에 산초나무 친척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중국의 쓰촨성인데 올해 큰 주목을 받은 마라(痲辣)의 원료입니다. 마라는 마취나 마비를 뜻하는 '마(麻)'와 맵다는 뜻의 '라(辣)'가 합쳐진 단어로 매우면서 얼얼하고 마비가 있는 자극적인 향신료입니다. 마라는 건고추와 화자오, 후추, 정향 등이 들어가는데 화자오가 바로 산초나무의 열매입니다. 우리나라 산초와는 조금 다르지만 먹어보면 덜 익은 산초나 초피의 열매를 깨물었을 때와 비슷합니다. 초피나무속 형제들이기 때문에 맛이나 향이 크게 다르지 않아 거부감 없이 마라 음식이 우리나라에서도 각광을 받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일본에도 산쇼라는 이름으로 초피를 사용하는데 이름이 산초에서 유래되어 혼동하기도 하지만 활용법은 비슷합니다.

초피에 대한 다른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조선왕조실록에 초피의 잎과 열매로 물고기를 잡았던 기록으로 두 번 등장합니다. 빻은 초피나무 잎을 냇가에 풀어 물고기를 잡는 행위를 비판하는 상소문입니다. 초피의 강한 성분으로 물고기를 기절시켜 잡는 것인데 초피와 산초는 물고기와 자주 연관되어 왔습니다. 매운탕이나 물고기의 비린내를 없애는데 산초나 초피를 사용하는 것도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방법입니다.

박현수 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숲해설가
박현수 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숲해설가

산초나 초피는 다른 생태적인 역할을 합니다. 바로 호랑나비를 키우는 대표적인 나무입니다. 다른 곤충들이 산초 성분을 기피하는 것에 반해 호랑나비의 애벌레는 산초나무 잎을 먹고 자랍니다. 그 후 다시 산초나무 잎에 알을 낳아 순환이 계속됩니다. 각각의 생물들은 자신만에 특이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에 맞게 자신의 자리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갔던 생명들은 지금도 각자에 맞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능력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은 다른 생명들과 교감하는 첫 단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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