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순감옥에서 빌렘 신부와 두 동생(정근, 공근)들을 면회하는 안중근 의사. / 독립기념관 제공
뤼순감옥에서 빌렘 신부와 두 동생(정근, 공근)들을 면회하는 안중근 의사. / 독립기념관 제공

[중부매일 유창림 기자]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안중근(1879~1910)을 2019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10월 한 달간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안중군 의사의 사진 등 총 9점이 전시된다.

1879년 9월 2월(음력 7월 16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안중근은 아버지가 천주교에 입교하면서 세례를 받고 세례명을 도마(Thomas)로 했다.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자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를 조직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애국계몽운동을 통한 국권회복에 힘쓰던 그는 일제에 의한 광무황제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 해산 등을 보면서 국내 항일운동에 한계를 느껴 국외 독립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고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했다.

북간도를 거쳐 연해주에 도착한 안중근은 동의회 산하 의병부대의 우영장을 맡아 1908년 여름 두 차례의 국내진공작전을 이끌었다. 그러던 중 초대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가 1909년 9월 만주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10월 26일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러시아 헌병에 체포된 안중근은 뤼순에 위치한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으로 송치되어 여섯 차례 재판을 받았다. 법정에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의 15가지 죄를 지적하고,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적장 이토를 처단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일본 법원은 사형을 선고했다. 안중근은 옥중에서 자신의 자서전인 '안응칠역사'와 거사 이유를 담은 '동양평화론'을 저술하다가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뤼순감옥에서 사형 순국했다.

정부는 안중근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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