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석민 충북법무사회 회장

'조국'이라는 말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이쪽은 수사는 물론 재판을 하기도 전에 장관 무죄, 검찰은 피의사실 공표죄로 확정했고, 저쪽은 조국 장관이 주범으로 결론 냈다. 수사도 재판도 필요 없다. 부자·부부·형제·친우 간에도 다툰다. 나라가 두 동강 났다.

이 정도 충돌을 부담할 가치가 있는가?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도 아니고, 검찰 개혁은 조국 장관만이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조국 장관은 '나는 검찰 개혁용'이라고 한다. 그럼 검찰은 개혁을 반대하는가? 물어는 보았나, 아니 검찰이 찬성을 한 들 믿을 것인가?

지금의 충돌은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했다. '검찰은 검찰의 길을, 장관은 장관의 길을' 이 말은 문재인 대통령 장관 임명의 변(辯)이다.

말씀을 살펴보자. 먼저 검찰은 검찰의 길을 가고 있는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맞다. 장관은 장관의 길을 가고 있는가? 개혁을 한다고 하니 맞다. 둘 다 제대로 하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검찰의 칼이 장관을 겨누고, 장관의 화살은 검찰을 향하며, 나머지는 청군, 홍군으로 결사항전을 하니 문제다. 장관 임명의 변(辯)에서 말한 문재인 대통령의 '개혁과 민주주의의 발전'은 사생결단을 통한 승자(勝者)를 가리는 전쟁이 됐다.

그럼 검찰이 수사를 멈추고 검찰 개혁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고 생각해 보자. 헌법 제1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에 장관은 예외인가? 헌법 제31조의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에서 '능력'이란 부모의 능력을 말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를 창조하는 것을 말하는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란 통상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힘'이라고 사용한다. 그러나 원래의 뜻은 말의 길이 끊어진 곳에 도(道)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장관 임명의 변(變)은 언어도단이다. 원래의 뜻은 아름답지만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가능한 경우는 검찰과 장관이 수평적 관계이면서 서로 다른 방향을 볼 때이다. 그러나 장관과 검찰은 수직적 관계이며 얼굴을 맞대고 칼을 겨누고 있다. 즉 양립불가(兩立不可)의 상황에서 각자의 길을 가라는 말은 싸워 보라는 것이다.

여당 정치인들은 검찰에 정치를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도 정치를 검찰에 갖다 바치고 있는 것은 정치인 본인들이다. 검찰 개혁의 첫걸음은 정치인들이 정치를 검찰에게 맡기지 말고,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정치를 형사 사건으로 만들어 검찰에 넘기고 이쪽은 공정 수사라고 하고, 저쪽은 부당 기소라고 한다. 바람이 불어 깃발이 날렸는데 바람이 깃발 탓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치인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가. 남 탓하지 말고 정치인은 정치인의 길을 가라. 문제를 해결하고 상대를 설득하라. 남북으로 나누어진 나라를 동서로 가르더니, 이제는 청군, 홍군으로 나누어 얻어지는 이익이 무엇인가? 도대체 정치인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최근에는 한발 나아가 촛불을 들고 서로 간 세(勢)를 겨루어 보자고 한다. 나라를 분열로 끌고 가서 힘 대결하는 것을 '조자룡 헌칼 쓰듯' 해서는 안 된다. 말위에서 나라를 얻었다 해서 말위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다.

지금 실종된 것은 '정치(政治)'이고, 오늘 필요한 것은 정치(正治)이다.

김석민 충북법무사회 회장.<br>
김석민 충북법무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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