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우체통
느린 우체통
  • 이지효 기자
  • 승인 2019.10.1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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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이난영 수필가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 황금빛 들녘과 백일홍, 깃털 맨드라미, 코스모스가 어우러진 예쁜 고샅길, 꿈엔들 잊을까. 코스모스는 꽃의 여신 플로라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최초로 만든 꽃이라고 하더니 코스모스만 보면 고향이 그립고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수줍음을 타는 소녀처럼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코스모스 향연을 찾아 나섰다. 생명의 중심, 풍요의 고장, '함께 웃는 청주'에서 2008년부터 청원생명축제를 개최하고부터는 축제장에서 그리움을 달랜다. 코스모스를 비롯해 온갖 꽃은 물론 다양한 볼거리, 먹을거리, 신나고 재미있는 공연과 체험 부스가 무궁무진하다. 해가 거듭될수록 점입가경이다.

지난해에는 풍선아트 자원봉사까지 하는 뜻깊은 축제를 보냈다. 오감을 만족하는 청원생명축제에서 풍선아트는 흥미를 얻지 못하지 싶었는데 칼, 모자, 꽃, 곰돌이 등 예쁘게 만들어진 풍선을 본 아기부터 어르신들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열댓 명이 만들어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인기에 어리둥절했다. 다급한 마음에 제대로 만들지 못해도 고맙다며 환한 미소 지을 때는 민망하면서도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팔이 아프도록 풍선에 펌프질하면서도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봉사를 마치고 축제장을 돌아보는데 힘듦과 달리 발걸음은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가벼웠다. 볼거리가 많아 바삐 다니는데 느린 우체통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느린 우체통은 시간에 쫓기고 빠른 속도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손편지의 감동,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을 전해주는 특별한 우체통이다. 일반 우체통에 넣은 우편물은 며칠 내로 전달되지만, 느린 우체통에 넣은 우편물은 6개월이나 1년 뒤 적어둔 주소로 배달해 주는 것이다. 뉴스나 드라마에서 보고 듣긴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라 호기심이 컸다. 비치된 엽서에 써도 되고, 편지지에 써도 되나 일행들보다 걸음이 늦어 엽서에 쓰기로 했다.

정성이 담겨 있는 손편지를 언제 써 보았던가, 20여 년 전 아들이 군에 있을 때 열심히 주고받았으나 그 이후는 처음인 것 같아 떨리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다. 갑자기 쓰려니 무슨 말을 써야 할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경제가 힘든데도 참가 업체나 관람객들의 밝은 모습을 보며 축제장에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고 행복이란 생각에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하였으면 하는 바람과 국가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엊그제 청원생명축제를 가려고 집을 나서다 우편함을 열어보니 지난해 보낸 엽서가 방긋 웃고 있다. 일 년 전 행복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감개무량했다. 작년에는 얼떨결에 느린 우체통을 이용했으나 올해는 마음먹고 잘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길을 재촉했다.

알록달록 예쁜 꽃들과 청원생명축제의 상징인 농부 조형물, 신랑·신부 조형물, 아이들이 좋아하는 백설 공주와 디즈니 캐릭터가 반긴다. 생명의 화원엔 코스모스와 아름다운 수많은 꽃이 조화롭게 조성되어 감탄을 자아낸다. 방글방글 미소 지으며 반기는 꽃들에 사랑스러운 눈 맞춤하느라 바쁘다.

생명농업관은 색색의 안개꽃 드라이플라워가 환영한다. 각양각색의 양란은 은은한 향기로 유혹하고, 우리 농산물인 마늘과 옥수수도 작품으로 변신해 친근하게 다가와 기쁨을 준다. 손이 많이 가지 않고 공기정화 능력이 뛰어나 인기 절정인 다육식물이 인테리어 액자로 변신을 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명품 스타일이란 생각이 든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은 사람의 마음을 행복으로 녹여낸다. 연인, 친구들, 가족 단위로 행복한 모습을 담느라 여념이 없다. 나도 인증샷 하나 찰칵. 밝고 화사했던 얼굴은 어디 가고 주름살 자글자글한 낯선 여인이 어색한 웃음 짓고 있다. 깜짝 놀라 얼른 삭제하고는 계면쩍어 피식 웃어 본다.

선조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물레방아. 물레, 우마차, 쟁기 등 농기구를 돌아보며 돌아가신 부모님 얼굴도 그려본다. 원목으로 생활용품 만드는 목공체험,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게릴라 가드닝 체험 등 여러 가지 체험을 즐기고, 인삼, 더덕 같은 품질 좋은 친환경 농산물을 시중보다 저렴하게 구매하니 부자가 된 듯 입이 귀에 걸린다. 행복한 마음을 남기고 싶어 느린 우체통을 찾았다. 보이지 않아 안내요원에게 물어보니 올해는 없다고 한다. 이용자가 없어서인지 주최 측의 사정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허전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아무리 먼 거리도 휴대전화, SMS, E-mail 등으로 서로의 소소한 소식까지 빠르게 전할 수 있는 정보화 시대이지만, 정성이 담긴 손편지가 주는 감동만 할까. 받을 사람의 마음마저 헤아려 정성 들여 쓴 편지 한 통에서 묻어나는 향기는 그 어떠한 말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해본다.

이난영 수필가<br>
이난영 수필가

따뜻한 손편지가 그리워지는 계절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즐거움과 감동이 넘쳐나는 친환경 축제 청원생명축제는 치유와 힐링의 축제였다. 관계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다만, 국민 정서에도 이바지하고, 기다림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느린 우체통도 있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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