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정의'가 되어가는 사회
'힘이 정의'가 되어가는 사회
  • 중부매일
  • 승인 2019.10.17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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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시론] 한병선 문학박사·교육평론가

우리 역사에서 정의와 공정의 문제를 놓고 온 국민이 양분될 정도로 심각하게 대립한 적이 있었을까. 처음이다. 지금까지 조국 법무부 장관의 거취 문제를 놓고 벌어졌던 이런 갈등은 분명 기존의 양상과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한 마디로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약속과는 달리 그들의 실제 모습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드러난 반칙과 비상식을 보면서 젊은이들의 허탈감은 컸다. 자신들은 특권을 이용하면서도 보통 사람들은 "개천의 가재나 붕어, 개구리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 태연함과 공감부재는 수많은 부모들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고교생 신분으로 의학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된 경우만 해도 그렇다. 일부에서는 고등학생 신분이라고 해서 연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단 1%의 상식이라도 있다면 그런 이야기는 결코 할 수 없다. 누구든 연구자라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주체가 제1저자로 등재되는 것이 정상이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의학한림원)도 이런 점을 지적하며 의학계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커다란 충격과 실망을 주었다고 비판했다.

금수저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즐긴다. 그것을 합리화하는데도 능하다. 정의를 추구한 현실주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의 말에 답이 있다. 그에 의하면, 금수저라는 특권적 계급의 도덕적 태도는 전반적인 자기기만과 위선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이들이 비 특권계급에 비해 더 위선적인 이유는 자신의 특권을 평등한 정의라는 합리에 무엇인가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의 가장 보편적인 위선의 형태는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을 자신들의 특수한 역할에 대한 사회의 정당한 보답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금수저들은 그들만의 특권으로 사들인 교육기회와 특권적인 사회적 지위를 통해 다양한 권리행사의 기회를 갖게 되고, 이를 후천적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닌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또한 특권 계급에는 유능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자신들이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온갖 협잡과 무능력을 그럴듯하게 변호하거나 둘러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니버의 지적대로 지금 우리의 모습도 이런 상황이다. 특권적 계급들이 사들인 교육기회, 더 정확히 말하면 보통 사람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인턴 프로그램, 의학연구 프로그램과 승마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자신들의 금수저 크기를 더욱 키워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특권적, 우월적 권리로 이화여대에 들어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 "돈 없고 빽 없는 부모를 원망하라"고 했던 정유라의 말, 지금 문재인 정권에서 나오고 있는 "용이 되지 않아도, 또 그럴 필요도 없다"는 금수저 출신들의 언사는 니버의 지적 그대로다.

이런 정도면 '힘이 곧 정의'라는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현실에서는 힘이 정의가 되는 경우는 많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도 보통명사화 될 정도로 돈의 힘이 정의가 된 경우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우리 땅이었지만 힘에 밀려 러시아 영토가 된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鹿屯島)도 힘이 정의가 된 사례다. 중국이 힘을 앞세우는 '팍스 시니카(Pax Cinica)', 미국의 트럼프가 부르짖는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 Policy)'도 힘이 곧 정의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핵심은 개인들의 윤리적 힘이다. 개인도 자기 이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긴 하지만 스스로를 성찰하지 못한다면 집단과 국가는 더욱 이기적인 결사체가 되고 만다. 금수저, 특권층들은 말할 것도 없다.

[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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