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천 칼럼] 박종천 논설위원

매년 11월 둘째 목요일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는 날이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수능 시험장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경찰순찰차를 타고 늦게 도착한 학생이 허겁지겁 뛰어드는 시험장 입구에서 엄마는 자녀의 손을 잡고 "떨지 말고 공부한 만큼만 침착하게 하면 된다"고 격려한다.

선배 수험생들을 응원하는 후배들의 힘찬 외침이 고교 이름과 함께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학교 정문이 닫히고 시험은 시작되어도 학부모들은 떠나지 않고 창살 앞에서 '입시한파'를 견디며 간절히 기도한다. 이날은 전국적으로 관공서와 기업체들도 출근을 한 시간 늦춰 준다.

대학 수능에 이처럼 전 국민이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노력한 결과를 제대로 평가받기 원해서이다.

예전에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불렀었다. 자식의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부모님들은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였던 소를 팔았고, 대학은 그런 소들의 뼈가 쌓인 탑이라는 뜻에서다. 그래도 부모들은 기쁜 마음으로 자녀의 대학입학을 위해 희생했다.

수험생에 대한 가족의 지원은 갈수록 심해져 최근에는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할머니의 운전 실력, 동생의 희생이 있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라는 자조(自嘲) 섞인 말까지 유행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이랴, 입시에 효험이 있다는 곳마다 기도 명당이 되었는데 연풍새재도 그 중 하나다.

충북 괴산군에 있는 연풍새재는 연풍면과 경북 문경을 잇는 옛날 고갯길이다. 조선시대 영남지방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시험 보러 갔던 길이 북쪽에 경북 영주~충북 단양의 죽령(竹嶺), 가운데에 새재(조령, 鳥嶺), 남쪽에 경북 김천~충북 영동의 추풍령(秋風嶺)이 있었다.

선비들은 죽령으로 가면 대나무처럼 미끄러져 낙방하고, 추풍령으로 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속설에 주로 새재를 통해서 한양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이 길에는 '과거길'이라는 이름도 붙여졌고, 선비 석상과 마패, 갓, 부채, 책 등 과거시험을 연상케 하는 조형물들이 합격을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실제로 이 새재 길을 걸었던 박문수가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최근 수능생을 둔 학부모들이 찾아와 수능대박을 기원하고 갔다.

올해 전국에서 수능 응시생이 54만8천734명이고, 충북에서만도 1만3천964명이나 된다고 한다.

하지만 수능이 끝이 아니고 대학 입학도 끝이 아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든, 나쁜(?) 대학에 들어가든, 또는 대학에 가지 못하든 모두 더욱 정진하고 노력해야 자기발전과 취업이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홈런 타자이며 한화 이글스의 유일한 우승을 이뤄낸 살아있는 레전드, 장종훈 선수가 있다. 청주 세광고 출신인 그는 대학을 가지 못한 채 연봉 300만원의 연습생으로 입단했지만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정상에 섰다.

그가 말했다. "사람들은 저를 고졸신화라고 말합니다. 칭찬으로 하는 말이지만 고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저로써는 그 별명이 좋을 리 없습니다. 근데 제가 대학에 입학한다면 고졸신화는 사라지는 겁니다. 혹시 모르잖아요. 자신의 학력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제가 희망일지도…, 전 그런 사람의 희망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수능을 잘 본 수험생이나 그렇지 못한 수험생이나 '나는 나다'라는 자존감과 자신감을 갖고 더욱 정진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우쳐 준다.

아무튼 지금까지 꽃다운 청소년기에 시험 중압감을 이겨내며 수고한 수험생과 그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몸과 마음을 졸였던 학부모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박종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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