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렘가 같던 곳에 빛 선물… 마을 변화 보니 욕심 생겨요"

이명순 사직1동 행정민원팀장이 주민들을 위해 남은 40일도 헌신하겠다고 다짐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명순 사직1동 행정민원팀장이 주민들을 위해 남은 40일도 헌신하겠다고 다짐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중부매일 신동빈 기자] 오후 8시가 지나면 주변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는 마을, 빈집마다 노숙자들로 가득한 곳. 이명순(59) 사직1동 행정민원팀장 눈에 비친 마을의 모습이었다.

"20~30년 전에는 사직1동이 청주시 제일가는 부촌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돌아와 보니 대한민국 할렘가가 따로 없었어요. 토끼굴처럼 이어진 골목골목은 낙후된 가로등이 제구실을 못하면서 한 치 앞도 분간하지 못할 정도였죠."

안타까움을 느낀 이 팀장은 그 길로 야간순찰을 다니며 지역 치안문제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 마을서 20년 넘게 영업을 해온 미용실 사장님을 만난다.

"여사장님 혼자 운영하는 미용실이었는데 오후 7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가게 문을 닫고 있었어요. 왜 일찍 가냐 물었더니 '무서워서 더 못 있는다'는 대답이 돌아왔죠."

불량 노숙자들이 여성 혼자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가 위협을 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다보니 만에 하나 불상사를 대비하기위해 가게 문을 일찍 닫는 것이다.

"상황이 심각하구나 느꼈어요. 올해 12월 퇴직을 앞둔 제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주민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밝은 거리를 만들어주자 결심했어요."

이 팀장은 먼저 낙후된 나트륨 가로등을 LED로 교체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30여년 공직생활로 잔뼈가 굵을 대로 굵었던 이 팀장이었기에 사업은 일사천리로 추진됐다.

"직능단체 회원분들을 모시고 주민들을 위해 사업을 꼭 해내겠다고 공표했어요. 처음에는 재개발 예정지역에 돈을 쓰겠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지만 오랜 대화를 통한 설득으로 주민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습니다."

이 팀장과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의 노력으로 도비 5천400만원, 시 긴급예산 1억5천만원을 확보한 사직1동은 지역 가로등 220여개를 LED조명으로 교체했다.

"어두웠던 마을이 조금 밝아졌을 뿐인데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밤이 되면 문 걸어 잠그기 바빴던 마을사람들이 무심천 산책을 즐기는 등 활기를 띄기 시작했어요. 그러다보니 일찍 문을 닫았던 상가도 폐점시간을 늦추고 사람들을 맞았죠. 지역이 변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직1동은 10여년 간 150여 채가 넘는 빈집이 무단으로 방치되면서 노숙자나 비행청소년들의 아지트로 이용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경찰 행정력만 가지고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자체 순찰대를 꾸려 조금씩 바꿔보자 생각했습니다."

이 팀장은 충북특전전우회와 청주응급구조대를 만나 '사직1동 8천700여 명의 주민 중 대부분이 노인이라 각종 치안문제에 취약하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두 단체는 일주일에 2~3회(오후 7~11시) 순찰을 돌며 치안유지 활동을 벌였다.

"정기적인 순찰이 이뤄지니 제일 먼저 몰려다니던 청소년이 없어졌어요. 그리고 노숙자분들도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머물게 하며 사건·사고를 방지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 팀장은 빈집 소유 법인 또는 개인에게 건물 '청결명령'을 내리며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나섰다. 또 이러한 조치로 갈 곳 잃은 노숙자들을 위한 행정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이분들도 청주시민이기 때문에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밀려나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 또 다른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에 세심한 행정이 필요합니다. 사직1동의 경우 주민 기부로 식사나 물품지원을 하는 흥부네 곳간 사업이 대표적입니다."

이밖에도 이 팀장은 마디사랑병원(원장 변재용)과의 협약을 통해 사직1동 주민은 비급여 의료항목에 대해 최대 20%까지 할인받을 수 있게 하는 등 세심한 부분까지 살피며 '함께 웃는 청주' 만들기에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쉴 틈 없는 한 해를 보낸 이 팀장은 퇴직을 40여일 앞뒀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지난 11월 초 실시한 '아름다운동행' 행사가 호응이 높아 오는 12월 2탄을 기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희망을 배달하는 산타' 이벤트를 추진하려 합니다. 선물을 가득히 준비해서 모두가 행복하고 따뜻한 연말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 제 마지막 사명입니다."

30여년 공직생활이 지칠 법도 했지만 주민들을 위한 사업을 설명하는 눈에는 열정이 가득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일을 하면 즐겁게 일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어깨를 맞대고 의지하며 일을 해나가다 보면 '함께 웃는 청주' 실현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평생을 함께 해준 아내에게 진심어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퇴직 전 남은 연차를 쓰려고 하는 제게 아내가 '국민세금으로 받는 월급이 얼만데 쉬려고 하나, 퇴직하면 시간 많으니 연차 쓰지 말고 끝까지 봉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지금까지 쌓아온 공직생활을 잘 마무리하라는 깊은 뜻이 숨어있었죠. 고마운 아내를 위해 퇴직 후에는 아내 000씨를 위한 인생을 살아보려 합니다."

이 팀장의 말에는 평생 표현하지 못한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이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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