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득렬 교수의 고사성어 - 管鮑之交(관포지교)
배득렬 교수의 고사성어 - 管鮑之交(관포지교)
  • 중부매일
  • 승인 2019.11.2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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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의 진정한 우정

대학가는 한창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신입생 선발과정, 차기 대학 학생회 임원의 선출 등등. 재미있는 모습은 차기 대학 학생회 임원 선출과정의 양상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학생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해 이 추운 날도 아랑곳하지 않고 구호를 외치고, 인사를 나누며, 심지어는 목청높여 노래까지 부른다. 세계 어디를 가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그들의 열정, 민주주의의 실천이라는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 대한민국이 이래서 세계에서 찾기 힘든 민주화에 성공한 사례를 만들어낸 것일까?

이번 학생회 임원선거에 우리학과의 한 학생이 출마했다. 평소 눈에 잘 띄는 학생은 아니었는데, 용기를 내어 출마한 모습이 참신하게 보였다. 그리고 이 학생의 인간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었다. 영하를 넘나드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를 위해 나서는 그의 벗들. 이는 아마도 이 학생의 평소 친구관계가 좋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였으리라!

친구란? 벗이란? 삶을 나누는 同志아닐까?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지지고 볶더라도 늘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 나를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 이런 벗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행운아고, 행복한 사람이다. 이를 확장하면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주위의 나라와 벗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본이 그렇고, 중국이 그렇고, 미국이 그렇다. 요즘 주위 나라들과 우리나라의 관계를 보면 각자도생의 길을 걷은 것 같다.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이 뇌리를 스친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잘 아는 管鮑之交의 고사가 떠오르는 것은 요즘 우리를 둘러싼 외교관계에 대한 내 소회가 분명 작용했으리라. 고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春秋時代(춘추시대), 齊國(제국)의 管仲(관중)과 鮑叔牙(포숙아)는 절친한 친구였다. 그들이 南陽(남양)에서 함께 장사할 때 管仲이 더 많은 이익을 차지하려고 하였다. 鮑叔牙는 그의 집안이 가난함을 알았기에 그가 욕심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管仲이 몇 차례 일을 그르쳤지만 鮑叔牙는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훗날 管仲이 公子(공자) 糾(규)를 돕다가 王座(왕좌)를 놓고 다투고 있던 公子 小白(소백)에게 활을 쏘아 다치게 하였다. 公子 小白이 王位(왕위)에 올라 齊桓公(제환공)이 되었을 때, 魯國(노국)으로 날아나 있던 管仲을 압송해올 줄은 大夫(대부)였던 鮑叔牙도 몰랐다. 管仲이 齊國으로 돌아오자마자 鮑叔牙의 추천으로 齊桓公의 宰相(재상)이 되었고, 반면 鮑叔牙 자신은 管仲의 助手(조수)가 되었다. 鮑叔牙가 죽자 管仲이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鮑叔牙다"라고 통곡하였다.

입장차는 언제든지 존재한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대상은 늘 있게 마련이다. 정치에서도 물론 마찬가지다. 그러나 인간 내면의 가치, 대상의 존재의의를 분명히 인식하는 일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鮑叔牙다"라는 管仲의 사무친 외침은 가치를 제대로 알아봐준 벗에 대한 통곡이며, 대상의 존재의의를 명확히 간파한 지혜로운 벗의 상실에 대한 비통함이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기대한다. 일본이 제국주의 적 망상에서 벗어나길! 중국이 패권주의를 벗어나길! 미국이 미국제일주의에서 탈피하길! 이익은 필요하지만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공멸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일임을 서로 인식하길! 달력이 달랑 두장 남아있다. 바쁜 일상으로 서먹해진 벗들에게 안부라도 전하면 좋은 때가 아닐까?!

배득렬 충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배득렬 충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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