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와 시계 사이 / 문정희

이 아침 고장 난 시계 속에 눈을 뜬다
고장 난 시계가 이를 닦고
고장 난 시계가 밥을 먹고
고장 난 시계가 나이를 먹는다
그래도 어딘가 맞는 시계가 있으리라
나는 그런 시계를 하나 갖고 싶다
나는 CNN을 본다. CNN은 당황하여
고장 난 시계가 있는 곳에 특파원을 파견하고
꼬리를 잘 흔들고 손을 싹싹 비비고 눈치를 살핀다
고장 난 시계에다 총구를 갖다 댄다
고장 난 시계를 고치러 다니는 사람들을
대화라든가 외교라는 말로 보도한다
결국 모두가 제 힘으로 살다 가는 것
세상의 모든 시계를 똑같게 고칠 수는 없나 보다
너와 나 사이에는 어차피 시차가 있다
고장 난 시계로 길을 걷다가
교차로에 서서 시계탑을 본다
나의 시계가 맞는지 교차로의 시계가 맞는지
알 수 없다
모든 시계는 나이가 없다
제각기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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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또 저물어 가고 있다. 어제는 동창회 단톡방에 누군가 "오늘은 11월의 끝자락! 끝까지 마무리 잘하시고 행복한 12월 맞으세요"라는 간곡한 부탁의 문자를 올렸다. 나는 갑자기 깜짝 놀란다. 그 이전의 공기와 시간은 평평한 대지인 줄 알고 걸어왔는데 문득 거대한 산과 절벽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렇듯 "나의 시계가 맞는지 교차로의 시계가 맞는지/..../모든 시계는 나이가 없"을 뿐더러 "제각기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면 시계와 시계 사이에 우리가 놓여 있다. / 최호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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