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유창림 부장·천안주재

천안 일봉산을 지키겠다고 나무 위에 올라 고공농성과 단식농성을 병행했던 환경운동가 서상옥씨(여·53)가 지난 1일 오후 급격한 건강 악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고공농성 18일째, 단식농성 11일째의 일이다.

일봉산지키기주민대책위를 대표해 나무에 오른 그가 요구했던 건 "일봉산 민간공원특례사업의 정당성을 시민들에게 물어보자"는 것이었다.

대책위가 주장하는 개발사업인지 아니면 천안시가 주장하는 일봉산을 지키기 위한 최선책인지를 시민들에게 물어보자는 것이었다. 이 같은 요구는 갑작스러운 게 아니었다. 1년여 전 일봉산 민간공원특례사업이 수면 위로 오르면서 시작된 요구였다.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급기야 서상옥씨가 나무 위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천안시는 시민들에게 묻기를 거부했다. 오로지 시의 재정으로는 공원부지를 매입할 수 없고 지금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온 지 20년 동안 뭘 했는지는 입 아파 따져 묻지 않겠다.

그런 가운데 이상하리만큼 사업자에게는 유리한 협상이 이뤄졌다. 공원일몰제에서 국공유지는 가급적 유예해야 하는 가이드라인이 있음에도 15% 이상 국공유지를 포함하고, 전체 개발지 내 비공원사업지(아파트 개발지)를 전국 평균 18%를 상회하는 29.9%로 상정한 것이다.

민간공원특례사업이 정하고 있는 7(공원부지):3(개발부지) 원칙을 최대한 활용했다. 누가 봐도 개발자에게 최대 이익을 보장한 협상 결과다. 건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개발부지 비율에 따라 수백억원의 영업이익이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고 한다. 민간공원특례사업이 좌초될 경우 안게 될 재정적 부담에 개발자가 사업을 포기는 하지 않을까 안절부절한 천안시의 행정이 읽히는 대목이다.

시간을 돌려 처음부터 시민들에게 개발사업의 당위성을 물었더라면 천안시는 시민들을 등에 업고 협상력을 키울 수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랬다면 천안시가 지킬 수 있는 일봉산은 70.1%가 아닌 더 넓은 면적이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나아가 시민들이 원한다면 더 이상의 개발사업 보다는 환경보존 방향으로 정책을 바꿨어야 한다. 이 같은 이유에서 시민들은 일봉산 관련 천안시의 행정을 신뢰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천안시는 일봉산 특례사업에서 시민을 배제한 게 아니라 시민을 잃은 것이다.

유창림 부장·천안주재
유창림 부장·천안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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