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마상격구 장면.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마상격구 장면.

1960년 대학입시검정고시 시험문제에 '우리나라의 격구(擊毬)는 어느 때 부터 시작해 어느때에 전성했는가?'라는 문제가 출제됐다. 이 문제에 대한 당시의 모범답안은 '고려초에 시작되어 고려 중말엽에 전성했음'이라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1961년 6월 당시 서울대 사범대 체육교육과 학과장을 맡고 있던 나현성 교수(작고)는 "교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출제의 부당성과 해답의 그릇됨을 규명 시정하기 위해 '한국격구에 대한 소고'를 경향신문(1961.6.18)에 발표했다.

나 교수는 이 시험문제의 출제위원이 격구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당시 체육교과서마저도 검토없이 단편적인 일부자료와 추상적인 독단에서 출제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심지어 체육학계에서도 논란의 소지가 있는 문제를 출제한 것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전달했다. 특히 대학입시 검정고시는 어려운 환경에서 독학하는 청소년들이 대학의 입학자격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시험제도라는 점에서 교육자로서 무성의와 비양심적인 처사라며 출제위원의 반성을 촉구하고 관계당국의 교재내용의 재검토와 통일을 요구한 사건이었다.

구정동 석실분 서역인상이 들고 있는 것을 격구채로 보고 있다.
구정동 석실분 서역인상이 들고 있는 것을 격구채로 보고 있다.


이를 계기로 학계에서는 격구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다. 격구는 지상에서 하는 지상격구와 말을 타고 하는 마상격구로 나눌 수 있다. 지상격구는 지금의 하키와 유사하며, 마상격구는 말을 타고 공을 막대기로 쳐서 상대의 골대에 넣는 서양의 폴로와 유사하다. 이 중에서 마상격구는 인도의 스푼폴로에서 시작된 폴로와 같이 공만 치는 기술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을 치고 들어 올려 던지는 기술들을 포함하고 있어 서양의 폴로보다 훨씬 진화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격구의 유래는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시작해 중국에서 통일신라와 발해에 전해져 정착된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특히 발해인들은 고구려의 후예답게 격구를 좋아했고, 발해 사신들이 격구를 일본에 전한 기록도 나온다. 이미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다양한 마상무예가 존재했다는 점에서 격구의 유입은 기마민족의 후예인 우리에게 쉽게 받아들여지고 응용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경주 구정동 방형고분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석조물에 서역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들고 있는 막대의 끝이 지금의 하키채처럼 굽어 있는 것이 격구채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이 시기에 격구놀이가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여성(1901-미상)의 '격구도'
이여성(1901-미상)의 '격구도'

격구는 고려시대 성행하면서 조선중기까지 계속 전승됐다. 특히 지상격구는 조선시대에는 무과시험 과목으로 채택되어 무관들이 연마하는 무예이자 놀이형태로 발전했다. 하지만 조선중기이후 총포의 등장과 성리학의 발전으로 인해 소멸됐다. 이러한 격구는 지상격구의 경우 민간에 전승되어 장치기로 정착되어 민속놀이로 여러 지역에서 행했으나, 마상격구의 경우는 사장됐다.

고려시대에 격구를 즐긴 왕은 기록상 여러명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예종이 처음 격구를 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격구가 행해진 장소로는 이궁인 수창궁, 수녕궁, 장원정이 있고, 이궁에서 가장 많이 즐길 것으로 나타나며, 수창궁 북원과 장원정 서루는 마상격구장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왕들이 격구희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그 중에서 태종의 경우는 역대 왕 중에서 격구놀이를 가장 많이 즐긴 왕으로 직접 참여한 횟수가 30회에 달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초기에는 개성 수창구과 인덕궁에서 행해지다 한양천도후 경복궁과 창덕궁에서 행해졌고, 창덕궁에서는 태종때에만 24회로 나오며, 이러한 장소의 격구는 지상격구나 포구락으로 추측된다. 조선중기에 들어서서는 궐 밖의 모화루가 마상격구를 행한 곳으로 가장 많이 사용했다. 고려시대때 귀족과 왕들, 조선시대때는 고위무관과 왕들이 했다는 마상격구는 서양의 귀족스포츠라 불리는 폴로처럼 귀족무예였음엔 틀림없다.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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