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지만 딸애가 없어서 그런지 집안이 허전하다.

그렇지 않아도 넓은 거실이 딸애의 부재로 인하여 더 넓어 보이고 혼자 있는 시간이 썰렁하기 그지없다. 아침을 늦게 먹어서 그런가 점심때가 훨씬 지났는데도 밥 생각이 없어 뒤척이다 점심 겸, 저녁 겸 라면하나를 꺼내고 물을 끓인다.

워낙에 라면을 좋아하지만 요즘 들어 매일같이 늦어지는 남편과 딸애도 없다보니 늘 내 저녁 메뉴는 라면이다. 퇴근 전에 사무실에 앉아서 생각을 할 때는 집에 가면 따뜻한 밥을 해서 두부찌개라도 맛있게 끓여서 먹어야지 하고 생각을 하지만 집에 돌아와 내 앞에 놓인 저녁 식탁엔 영락없이 라면 한 그릇 이다.

라면 한 그릇에 익은 김치 몇 젓가락 가지고 아무렇게나 앉아 저녁을 때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모습이 초라해져 라면을 끝까지 먹는다는 것이 부담이 될 때가 있다. 중년의 여자가 혼자 앉아 라면을 먹는 모습이 남들에겐 어떻게 보여 질까?.

한창때인 이십대 같으면 그냥 밥맛이 없어 한 끼로 라면을 먹고 싶어 먹을 때도 있지만 중년여자가 혼자 먹는 라면은 어쩌면 남들에게 궁상맞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인지?

아이가 가끔 라면을 먹고 싶어 하고 늦게 돌아온 남편이 출출하다고 해서 끓여주는 라면에는 콩나물과 야채, 김치, 파를 곁들여 훌륭한 간식이 되게 끓여지는데 왜? 나 혼자 먹는 라면은 야채를 넣는 것도 귀찮아 그냥 맹물에 라면과 스프만 넣고 끓이게 되는지...

음식을 만들어도 남편과 딸애가 있을 때와 없을 때에 따라 재료가 달라지고 웬만하면 새로 무엇을 만들기 보다는 그냥 남아 있는 찬밥이나 라면으로 먼저 손길이 간다. 같은 라면 한 그릇이지만 내가 주식으로 먹는 라면이, 비가 내리고 있는 오늘따라 더 할 수 없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나도 가끔은 혼자서도 아주 멋진 식탁에 나만을 위한 밥상을 차려놓고 식사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 나를 위해 찌개를 끓이고 생선을 굽고 샐러드를 만들어 내가 나를 대접해 주자고 ,내가 나에 체면을 좀 세워주자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어디까지나 상상이고 머릿속에서 만 맴돌 뿐 사실 여자가 자기 혼자 먹자고 새로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고 상을 차린다는 일은 왠지 쉽지가 않다.

라면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퉁퉁 불어진 라면이 다시 한 그릇 가득 늘어나 버렸다. 우동가락처럼 퉁퉁 불은 라면을 보면서 난 다짐을 한다. 앞으로 혼자서는 절대 라면을 먹지 않겠다고.

/수필가 박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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