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정구철 충북 북부본부장겸 충주주재

전국시대 병법가였던 손자에 의해 유래된 '일벌백계'(一罰百戒)란 다른 이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본보기로 중한 처벌을 내리는 일이다.

충주시 환경수자원본부 소속 일부 공무원들이 단월정수장 현대화사업 기본·실시설계 용역업체 선정과정에서 일부 업체로부터 향응·접대를 받은 혐의로 국무총리실의 조사와 함께 경찰의 수사를 받고있다.

충주시는 이같은 사태가 불거지자 임택수 부시장과 일부 간부공무원들이 브리핑실을 찾아 시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이튿날 바로 해당부서 공무원 십 수명을 전보조치했다.

당시 상수도과의 책임자인 과장과 팀장은 물론, 시설팀과 관리팀 공무원 전원이 타 부서로 전보됐다.

국무총리실의 조사결과가 미처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전격적으로 취해진 시의 이같은 조치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초강수였다.

비위를 저지른 공무원들에 대해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느닷없이 대부분의 직원이 바뀐 상수도과는 마치 폭탄을 맞은 듯한 분위기다.

직원들이 대거 교체돼 업무 연속성이 떨어지다 보니 신규 업무 추진은 엄두조차 못내고 기존에 진행되던 업무도 상당수 차질을 빚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해당부서로 새로 배치된 공무원들이 대부분 상수도업무에 경험이 없다보니 업무가 전반적으로 매끄럽지 못한 데다 유기적인 업무처리도 미흡한 상황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번 조치를 놓고 대다수 충주시청 공무원들의 불만이 들끓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공무원들은 "시가 최소한 국무총리실의 조사결과라도 나온 뒤 시시비비를 가려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보여주기식으로 해당 부서 전체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만약 이번 문책성 인사에 억울한 피해자가 단 한명이라도 포함될 경우, 그에게는 평생 지우기 힘든 주홍글씨로 새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하위직 공무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식사자리 등에 따라갔다가 봉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 이후 충주시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복지부동'으로 통하는 보신주의가 팽배해 있다.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다.

형사소송법상 형사피고인에게도 확정판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열명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억울한 구속자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불구속 수사 원칙의 바탕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 시의 조치는 보여주기에 급급한 성급하고 섣부른 판단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조길형 시장은 최근 각종 행사장 등에서 "단월정수장 문제와 관련, 철저히 조사하도록 해 비리에 연루된 공무원들에게는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일벌백계'를 통해 자신과 비위에 연루된 공무원들 사이에 철저히 금을 긋겠다는 의도로 비쳐진다.

하지만 오늘날 '일벌백계'라는 말은 지휘자가 자신의 면피를 위해 부하들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사례로 악용되다 보니 그리 좋은 뜻으로는 해석되지 않는다.

단월정수장 문제에 관련된 공무원들이 자신의 부하 직원임을 감안하면 조 시장 역시 그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데 대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시정을 책임지는 수장에게 '독야청청'(獨也靑靑)이란 말은 적합치 않다.

자신의 입으로 부하들의 잘못을 탓하고 원망하기보다는, 부시장과 간부공무원들을 내세워 사과하기보다는, 시정의 최고책임자인 조 시장이 직접 나서 머리를 숙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구철 충북 북부본부장겸 충주주재
정구철 충북 북부본부장겸 충주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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