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여행]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핀란디아 홀 / 출처:wikimedia
핀란디아 홀 / 출처:wikimedia

핀란드는 1918년 11월 11일 러시아에서 독립해 공화국을 선포했다. 당시 핀란드의 수도인 헬싱키에 있던 도심은 많이 낙후돼 있었다. 신도심은 새로운 시설이 필요했다. 거기다가 헬싱키 필하모닉은 나라를 대표하는 필하모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도 자신들만의 전용 콘서트홀이 따로 있지 않았다. 필하모닉은 연주할 때마다 매번 짐을 싸서 옮기는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 신도심 계획의 일환으로 핀란드의 유명 건축가 알바 알토에게 핀란드를 대표하는 콘서트 홀인 핀란디아 홀 설계를 맡겼다. 이는 핀란드의 유명한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헬싱키 필하모닉의 첫 연주도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였다. 이후 핀란디아 홀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콘서트 홀을 개관하고 나서 2년이 지난 후에 건물의 외부 마감재였던 카라라 산 대리석이 나무껍질처럼 떨어져 나갔던 것이다. 여기저기서 부실시공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건물 외관은 핀란드의 자연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르면 떨어지는 핀란드 백양나무의 껍질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핀란디아 홀이 지저분하게만 보였던 시의회에서 들어줄 리 없었고, 그들은 핀란디아의 마감을 화강암으로 모두 교체하길 바랐다. 알바 알토 측은 건축가의 저작권 문제라며, 건물 외형을 바꾸지 말라고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시의회 투표 끝에 알바 알토에게 손을 들어주어서 현재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자연에서 가져오는 재료는 모두 시간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알바 알토는 나무가 많은 나라에서 태어나 핀란드 자연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핀란드는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길어서 햇빛이 중요했다. 그래서 알바 알토는 건축에 빛을 받아들이는 걸 중요하게 여겼고, 따뜻한 느낌의 나무와 벽돌을 주로 사용했다. 공간 가운데는 항상 벽난로나 모닥불과 같은 따뜻한 장치를 두어서 집을 언제나 따뜻하게 유지했다. 그는 항상 자연 안에서 건축을 찾았다. 자연과 함께 시간에 흐름에 순응하는 건축을 했다. 겨울이라고 해서 죽음의 계절이 아니고, 봄이라고 해서 생명의 계절이 아니다. 떨어뜨려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꽃을 피워 생명을 잉태해 삶을 새롭게 만든다. 이는 자연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움직임이다. 자연은 위에 있는 것을 아래로, 아래에 있는 것을 위로 올려 서로 나눈다. 떨어졌다고 죽음이라고 하고, 오른다고 생명이라고 하는 건 인간의 편협한 사고에서 만들어진 단어일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주름이 지고 낡아서 벗겨지기도 한다. 많은 시간이 중첩돼 만들어진 것은 흔적을 남긴다. 알바알토는 이 모든 것이 자연의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연 안에서 시간을 건축했던 것이다.

지구에서 순환이라는 것은 일 년이라는 단위에서 시작한다. 해가 지구를 스물네 시간 동안 한 바퀴 훑고 지나가면 하루가 되고, 해와 달이 밤과 낮을 만들기를 반복해 약 서른 번이 채워지면 한 달이 된다. 물이 얼고, 꽃이 피고, 땅이 뜨거워졌다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계절이 차례대로 채워지면, 삼백육십 오 일, 열두 달을 품은 일 년이 된다. 거기서 또다시 일 년은 쌓이고 쌓여 억겁의 시간으로 세상을 만들어 낸다. 그 안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한 해가 시작됐다. 우리는 다시 일 년의 흔적을 만들어냈다. 해가 시작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그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다 보면, 예전보다 많이 보이는 흰 머리 이야기나 더욱 더 많아진 눈가 주름에 관한 이야기로 서로의 인사를 대신한다. 한 해가 지나면, 나이에 한 살이 더 해진다. 이는 백양나무의 껍질처럼 우리가 살아온 흔적이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그대로 두는 것이 아름답다. 지는 것은 지는 것으로 아름답고, 태어나는 것은 그대로가 아름답다. 핀란디아 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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