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문학박사·교육평론가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다. 이런 모습은 로댕의 '사색하는 인간', 파스칼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표현에서 잘 나타난다. 인간의 삶에서 핵심적인 주제는 두 가지다. '나는 누구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다. 이런 질문들은 인간 성립과 그 삶의 본질에 대한 핵심적 질문이다. 우리는 이런 관심을 소위 인문학으로 부른다.

인문학은 인간의 내면과 관련된 내용이 핵심이다. 문학이 어떻고, 철학이 어떻고 하는 것은 모두 인간의 내면 문제로 집약된다. 인간 내면의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사유하고 사색하는 것이 특징이다. 내면의 문제는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내면이 어떠냐에 따라 삶의 방식과 태도가 달라진다.

인간의 삶은 단순히 밥 세끼를 해결하는 문제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화두이긴 하지만 그것이 삶 전체를 포괄하지 않는다. 삶 속에는 먹는 문제 이상의 것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런 주제들을 두루 포괄한다는 의미로 삶을 '사람살이'로 표현한다. 한 개인의 삶은 그 개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의 종합이며 그 종합이 '삶'이란 것이다.

모든 삶은 그 안에 역사가 있고, 스토리가 있으며 희망과 좌절이 있다. 이런 점에서 한 개인의 삶은 그 사람만의 오디세이 자체다. 삶의 대서사는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삶의 화두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내면이 될 수도 있다. 나아가 삶은 한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문제로 종결되지만 내용적으로 우주의 생성과 소멸 같은 의미를 지닌다.

흔히 인문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인문학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밥 굶기 딱 좋은 공부라고 말한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매월 2천600만 원의 월급을 받는다고 자랑삼아 말하는 지인이 필자에게 돈 한 푼 되지 않는 인문학에 왜 관심을 갖느냐고 물었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더 생산적인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이 어떻겠냐는 충고였다.

돈 없고 빽 없으면 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올해도 이를 실감나게 목도한 한해였다. 돈과 권력을 소유한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자녀들을 취직시켰고 대학입시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공정사회를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불공정한 일에 앞장섰다. 내면적 성찰이나 합리적인 사고, 타인의 고통 공감,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 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공정과 과정을 강조해도 결과를 더 중시하는 것이 세상이다. 얼굴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예쁜 얼굴에 눈이 먼저 가는 것이 실제 모습이다. 욕심 부리지 않고 사는 것도 좋지만 경제적으로 쪼들리면 삶이 힘들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름다운 꼴찌를 추켜세우지만 일등만을 기억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세상은 이렇게 우리를 속인다. 그렇다고 내 자신이 세상 사람들처럼 모든 것을 다 갖추기는 어렵다. 금수저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어찌해야 할까.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마냥 부러워하고 질시만해야 할까. 돈 없고 빽이 없을수록 인문학적 사고로 무장해야 하는 이유다.

인문적 사고는 자신을 자신답게 세우는데 도움을 준다. 나 자신의 불리함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존감을 키워주고 굳건하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 인간의 가치와 인간적인 존엄을 유지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넘볼 수없는 권력을 쥐었어도 내 마음을 지키는 좋은 자양분이 될 수 있다. 그래서다. 필자는 인문학은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을 위한 공부라고 말한다. 돈 없고 빽 없는 상황에서 나 자신을 추스르는 길은 후마니타스(humanitas)적 사고로 자신을 무장하는 길 밖에 없다.

[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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