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문학]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새해 중학생이 되는 우리 집 녀석이 2019년 마지막 날 바람을 쐬고 싶다며 동행을 원했다. 사춘기에 접어들었는지, 아니면 중학생이 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지 도시를 벗어난 차안에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바다가 보고 싶어요', '공기 좋은 산에도 가고 싶어요'라며 중얼거렸다.

서로가 아무 말 없이 동해바다를 향해 달려가면서 문득 우리의 교육 현실이 청소년들에게 자연과 자유를 주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식적인 학교 소풍과 가족여행일 뿐 모든 생활이 입시와 학원에 집중되어 있다. 이렇다보니 '자연'이라는 단어는 이상일 뿐이다. 그리고 성년이 되어 가사와 직장에 얽매이다 보면 퇴직이후에야 '힐링'이라는 단어와 친숙해지려 애를 쓴다.

19세기 독일은 사회현상이 급변했고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으며 자연으로의 회귀에 대한 의식들이 퍼져 나갔다. 당시 베를린의 대학예비교육기관의 상급학생들이 걸어서 동네를 벗어나 야외에서 숙식을 하며, 시골 등지의 창고에서 숙박을 하는 등의 활동이 있었다. 이들 중에 칼 피셔라는 학생이 학교장을 설득해 그룹을 만들었고, 이러한 활동이 퍼지면서 1901년 전국조직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바로 청소년들의 철새운동으로 불리던 '반더포겔(Wander Vogel)'이다.

이 운동은 독일 전역에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자연복귀사상이 됐다. 전국조직이 만들어지면서 " 햇빛을 쬐어라, 호연지기를 길러라, 자연과 친하라, 격이 낮고 속된 유행가를 버려라, 조국의 국토지리를 알아라, 조국에 움트는 얼을 알아라, 협력하라, 단결하라'는 강령이 만들어져 유럽전역으로도 확대되기 시작했다.

거치장스러운 복장을 피하고 기타나 배낭만을 메고 각 지역의 음악(민요)를 재발견하면서 도시와 시골을 연계하는 도보, 산책, 방랑, 사이클링 등을 하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 운동을 통해 당시 독일 청소년들은 한층 성장했다. 사회경제적으로 성장한 중산층들의 이기주의와 안일주의, 그리고 이런 생각에 대한 반대되는 낭만적인 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사회규제를 풀고 자연과 자유로 돌아가자는 사회운동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이 운동이 조직화되면서 자연의 청소년 조직, 모험 정신, 자유, 자기 책임을 강조하게 되었고, 게르만 민족의 뿌리를 강조하는 민족주의로 접근했다. 이 철새운동은 '젊음의 운동(Jugend beweguag)'이라는 이름으로 퍼져 나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겨난 시설이 유스호스텔이다. 또 1960년대 미국의 '히피운동(hippie movement)'과 '스카웃 운동'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운동은 독일보다 약 1천500년 앞서 우리 한반도에서도 펼쳐진 바 있다. '삼국사기' 47권에 보면, '유오산수 무원부지(遊娛山水 無遠不至)'가 나온다. '유람하며 즐기는 산수 수련에는 먼 곳이라 할지라도 닿지 아니 하는 데가 없다'라는 의미다. 신라의 화랑도에 명산대천을 찾아다녔다는 기록들이 있으며, 화랑유적지에는 그들의 활동이 미친 사적들이 나오기도 한다.

심신을 연마하고 유람을 통해 견문을 이해하던 화랑의 활동과 반더포겔운동은 서로 다르지 않다. 어찌 보면 화랑 교육이 무예와 글쓰기, 그리고 음악과 그림 등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일의 반더포겔보다 월등한 고품격 교육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동해바다와 오색약수에서 하루를 머물고 돌아오던 길에 녀석은 한층 활발해졌다. 자연 앞에서 털어놓은 고민도 좋은 공기에 녹아 긍정적 에너지로 변했는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팍팍한 삶을 깨우치는데 자연과 함께 하는 것만큼 좋은 것을 없을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 자녀들에게 자연과 친숙해지는 교육에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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