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9. 파미르하이웨이 4일차(1편)

진리는 길 위에 있었다.

카라익쿰에서 10시간, 파미르의 관문인 호르그에서 사우나와 함께 호사스러운 1박을 하고 다시 판지강를 치면서 랑가(Langer)로 달렸다. 약 220㎞의 구간, 오르막을 오를수록 강폭은 좁아지면서 유속도 빨랐다. 설산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강은 다시 넓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했다. 온천도 나오고 옛날 군사적으로 이용한 요새도 나왔다. 그곳에서 한국인 여행객을 만나 안부도 묻고 스카프도 하나 샀다. 어느 곳이나 길은 물 따라 이어지고 사람들은 그 길 따라 오고 가며 만난다. 와칸(wakhan) 계곡을 한 마리 연어처럼 펄덕일 때 웅장한 돌산은 만년설을 머금고 반겨준다.


또 다시 가파른 고갯길이었다. 전망이 끝내주는 요새가 또 있어서 눈의 호사를 누렸을 병사도 생각이 났다. 요새 뒤쪽 계곡에는 자연 온천이 있어서 일행은 목욕을 하고 나는 고산증세가 좀 있어 그냥 쉬었다. 옛날 같으면 욕심 부렸을 것을 멈춤을 실천하는 내가 좀 있어 보였다. 다시 랑가 숙소로 내려오는 길에 옛날 절터가 있다고 했어 가보기로 했다. 혹시 서유기로 알려진 현장 법사나 우리나라 혜초 스님이 인도에서 붓다의 가르침과 불경을 구해서 넘던 그 길,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남기면서 넘었다는 그 고개길이 아닐까 싶어 설레였다.


동네 꼬마들의 안내를 받으며 헐떡이며 올라간 언덕엔 절은 없고 돌담 만이 풍상에 남아 있다. 몸을 돌려 들판 너머로 먼 산을 보니, 석양빛에 설산이 노을에 피어나고 있었다. 고승들은 왜 이 험한 길을 가서 법을 구했을까? 그렇게 힘들게 얻었다면 스스로도 충분히 법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에겐 인도까지 가서 굳이 도를 찾은 것은 하나의 방편이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도는 길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진리는 누군가의 가르침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길에게 물어야 한다. 파미르 고원에서 생사의 여정이 바로 그들에게 답인 것이다. 오늘도 파미르는 길을 찾는 이들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작가 이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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