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세계과학을 주도했던 세종대왕 그리고 장영실
15세기 세계과학을 주도했던 세종대왕 그리고 장영실
  • 중부매일
  • 승인 2020.01.2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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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한봉선 음성 맹동초 교감
영화 '천문' 홍보사이트에 게재된 사진
영화 '천문' 홍보사이트에 게재된 사진

지난해 12월 26일 개봉한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가 관객수 200만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손꼽히는 세종대왕과 관노 출신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세종대왕은 당시 조선이 엄격한 신분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재능과 천재성을 가진 장영실을 등용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20여년 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이 때 남긴 천문기록들과 그 시절에 만들어진 수많은 발명품들은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대단한 것들이었다.

# 천문 : 하늘에 묻는다

우리의 기술로 조선의 하늘과 조선의 시간을 만들고 싶어했던 세종대왕의 꿈은 장영실이라는 천재를 만남으로 현실화됐다. 천체관측시설인 간의대를 준공하고, 그 곳에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간의, 천체관측기기인 혼천의 등을 설치해 우리나라에 맞는 월력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대왕. 가장 괄목할 만한 발명품으로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그림자를 이용해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 앙부일구, 흐린 날이나 밤에도 쓸 수 있는 물시계 자격루와 옥루, 종래의 불완전한 방법을 개선해 과학적으로 강우량 측정이 가능했던 측우기, 하천수를 재는 수표 등이 있다. 특히 앙부일구는 궁궐 밖인 종묘 앞, 광화문 네거리인 혜정교에 설치해 모든 백성이 시각을 알 수 있도록 한 최초의 공중시계였다. 또한 세종대왕은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글자 위에 12지신 동물을 그려 넣음으로써 따뜻하고 세심한 애민의 마음을 담았다.

영화 '천문' 홍보사이트에 게재된 사진
영화 '천문' 홍보사이트에 게재된 사진

# 훈민정음과 인쇄술 : 문화에 날개를 달다

훈민정음은 1443년에 창조된 한국 고유의 문자체계로 훈민정음의 창제는 일부 특권층만 누릴 수 있었던 문자를 일반 백성들도 읽고 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뛰어난 언어학자이기도 했던 세종대왕은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 보급시켜 유교 윤리에 바탕을 둔 백성교화를 원활하게 함으로써 국가 기틀을 확고히 하고자 했다. 훈민정음의 창제와 함께 인쇄술의 발달은 이 시대 문화발전에 날개를 달아줬다. 세종대왕은 즉위 초부터 금속활자 인쇄기술 보완을 위해 주자소를 설치해 경자자, 갑인자, 병진자 등의 새 활자를 만들고 판짜기를 개량해 인쇄능률을 올렸다. 집현전을 중심으로 이뤄진 학문연구와 각종 편찬, 간행사업은 천문, 정치, 경제, 군사, 법률, 음악, 미술, 의약, 지리, 역사, 농업, 도덕, 문학, 예의 등 거의 전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게 했다.

# 무기혁신과 제도정비 : 자주국방을 가능케 하다

세종대왕은 즉위하자마자 이종무로 하여금 대마도를 토벌하게 해 경상도에 예속시켰고, 세종 15년에는 서북방 일대의 야인들을 토벌해 4군을, 세종 16년에는 김종서로 하여금 동북 변경 지방의 여진을 토벌해 6진을 설치했다. 이곳에 남쪽 백성들을 이주시켜 정착시킴으로써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우리 강토를 확장하고 방비를 튼튼히 하는 한편 조선의 지리를 조사하게 해 지리지를 편찬하게 하고, 실측 지도를 제작하게 했다. 무엇보다 세종대왕은 화전, 화포를 개량해 우리나라 무기 사상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화포의 주조기술과 화약 제조기술에 있어 중국기술의 모방에서 벗어나 천자화포, 지자화포 등 새로운 화포를 개발했으며, '총통등록'을 편찬해 화포의 주조법과 화약사용법을 상세히 기록하고 정확한 규격을 그림으로 표시했다.

영화 '천문' 홍보사이트에 게재된 사진
영화 '천문' 홍보사이트에 게재된 사진

# 정간보의 창안 : 한국음악사에 금자탑을 쌓다

음성 맹동초 교감
한봉선 음성 맹동초 교감

한글 창제에 버금가는 정간보의 창안은 세종대왕의 빛나는 업적 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음가를 표시할 수 있는 기보법이기 때문이다. 구전돼오던 세종 당시의 고려 향악곡 및 새로 창제된 수많은 곡들이 정간보로 기보돼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정간보는 현재까지 국립국악원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종묘제례악으로 연주되고 있는 '정대업'과 '보태평'은 1447년 회례의식에서 사용하기 위해서 창제돼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현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돼 있다. 이밖에도 세종대왕은 깊은 음악적 지식을 바탕으로 뛰어난 음악가였던 박연을 지원해 편종, 편경 등의 새 아악기를 제조하게 했으며, 조회아악, 제례아악, 회례아악을 정비하게 했고, 음악과 노래, 춤으로 구성된 '봉래의'라는 방대한 종합공연물을 창제하기도 했다.



▶NIE적용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 중에서 가장 오래된 직지심체요절에 대해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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