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지나가려니
다 지나가려니
  • 중부매일
  • 승인 2020.02.2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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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이영희 수필가

눈이 번쩍 뜨였다. 라인댄스도 중지되고 헬스장 가기도 찜찜하여 동네를 산책하는데 다복다복한 새싹들의 군락이 보여서다. 그 초록의 잎들에 둘러 싸인 자잘하고 앙증맞은 남 보라색 꽃무리에 현혹되었다. 순간 떨어진 낮별을 줍듯 무릎을 굽혀서 눈을 맞춘다. 우수가 지났다고 해도 꽃샘바람 심한 2월이고 비상시국인데 해맑은 아가의 미소같이 발목을 끌어당긴다. 생명과 가까운 것이 부드러움 이라더니 아지랑이까지 아질아질 타오르니 꼭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다.

이름을 알고 싶어서 스마트폰으로 꽃 검색을 했더니 '큰 개불알꽃'이라 알려준다.

'아뿔싸! 좁쌀만 한 크기의 들꽃에 이런 가당찮은 이름이라니.' 순간 괜스레 얼굴이 화끈하면서 실없이 파안대소를 했다. 수긍할 수 없어서 인터넷 검색을 해도 큰 개불알풀이라 뜬다. 개불알 난은 복주머니난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면 되지만 들판에 잡초같이 피어나서인지 다른 이름이 없다. 혼자 별꽃이라고 불러본다.

하긴 맞지 않는 이름이 어디 그뿐이랴. 코로나(corona)는 그 균의 모양이 왕관 같아서 그렇게 명명하였다는데 왕관을 쓰니 네로 황제가 된 것인가.

그래도 그 앙증맞은 들꽃으로 인하여 별을 바라보듯 마음이 평온해진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동하는 공포'에서 불안과 공포마저 세계화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 우리는 그것을 체감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못하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에 비하면 한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변함없이 제때에 싹이 돋고 꽃을 피워내는 자연의 섭리는 얼마나 위대한가. 어디든 갈 수 있는 우리는 그 앞에서 겸손함을 배운다.

톨스토이는 '세 가지 질문'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는 사람이며,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행복이다.'라고 했다. 다 지나가니 그게 현명한 일이지 싶은데 뉴스 특보를 보며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얼마 전의 내가 왜 그리 지각이 없었는가 싶다가도 이내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임에서 해외여행을 가기로 한 것을 취소하면서 소재가 날아가 버렸다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그런 발상이 일 때 미리 써 놓았던 쓸모없는 원고는 철이 없는 것이고, 도서관을 휴관하고 외출까지 자제하는 것을 보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으니 70여 년 전에 처음 출간된 20세기의 양심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다시 집어 들었다.

페스트는 흑사병(黑死病)을 말하는데 페스트균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이다. 쥐를 숙주로 기생하는 벼룩을 통해서 사람에게 전파된다고 한다.

알제리의 오랑 시에 페스트가 발생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찌 손써볼 기회조차도 찾지 못한 채 마지막을 생각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봉사 활동에 참여하기도 하나 일부는 밀수로 수익을 올리고, 오히려 페스트가 물러갈 것을 걱정하며 현재를 즐기는 부류도 있다. '사실 재앙이란 다 겪을 수 있지만 막상 그것이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지면 공포를 느끼게 된다. 늘 자신을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 보면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 주고 만다. 자연스럽게 침투한 페스트균을 의식하지 못한 채 지니고 있다면 페스트 환자라 할 수 있다. 건강, 순결성, 청결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이다. 페스트는 아마 다른 얼굴을 하고 오늘의 소중함을 잃은 우리들에게 어떤 경종을 울리기 위해 언제든 찾아올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한 문장에서 무릎을 쳤다. 페스트가 코로나 19라는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난 것인가.

고전은 이렇게 정확히 예견을 해서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뉴스를 보면서 격리된 듯 불안과 공포가 엄습하고 때론 무료하기도 하지만 예방 수칙을 잘 지키고 자발적 이동 제한으로 자중자애(自重自愛) 해야겠다. 시간은 멈추지 않아 좋은 일도 사스나 메르스도 다 지나갔으니 무심한 듯 대하는 것은 어떠할지. 때로는 조금 떨어져서 평상심으로 바라볼 때 제대로 볼 수 있고 대처할 수도 있다. 공동체 의식으로 봄바람이 새싹을 보듬어 주듯 '다 지나가려니'라고.

이영희 수필가

약력
▶1998 '한맥문학' 신인상. 2018 청주시 생명글자판 당선. 26회 동양일보 소설부문 당선.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청풍문학회 회장 역임.
▶수필집 '칡꽃 향기', '정비공'
▶청주시 1인 1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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