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상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지난 3월 11일은 다섯번째를 맞는 '흙의 날' 기념일로 매년 농림축산식품부 주관으로 기념식 행사를 가져왔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기념식 행사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기념행사를 떠나 지금처럼 흙에 대해 무심하고 소홀히 대하는 등 자칫 잘못하다간 농업과 생명의 근원인 흙의 소중함을 망각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먼저 앞선다.

우리나라가 흙의 날을 3월 11일로 제정한 것은 월에 해당하는 숫자 3이 '천(天), 지(地), 인(人)'의 3원과 '농업·농촌·농민'의 3농을 의미하고, '뿌리고, 기르고, 수확하는 것'의 세 가지 등 3이라는 숫자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흙 토(土)를 풀면 십(十)과 일(一)이 되기에 11일로 정해져 3월 11일이 흙의 날이 된 것이다. 흙의 날과 관련해 생각하게 되는 단어는 모든 것의 아래에서 모두를 받아주는 흙과 땅의 겸손(謙遜)이다.

그런데 라틴어로는 겸손(Humilitary)이 'Humus' 땅, 흙, 먼지라는 뜻의 어원을 갖고 있으며 흙에서 겸손의 의미가 파생되었다. 이렇게 흙은 늘 하늘에 대비하여 낮은 곳을 지키는 겸손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인간의 삶이 땅을 벗어날 수 없음을 생각하며 흙과 땅에 겸손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흙에 겸손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대적으로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함으로 인해 토양 자체의 생명력을 약화시켰으며, 미생물 활동을 억제하고 토양표피의 유실을 초래함으로써 토양 속 유기물 손실을 가속화 하고 있다.

1996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미국 화학자 리처드 에레트 스몰리(Richard Errett Smalley)도 인류에게 닥칠 5가지 문제로 '에너지, 물, 식량, 환경, 빈곤'을 들며, 이 모든 것이 흙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문제해결에 '흙의 관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흙은 농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작물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곳이며 우리가 먹는 식품의 95%는 흙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식품뿐만 아니라 의약품, 화장품, 건축자재 등으로 쓰이며 삶의 질을 높여주기도 한다. 토양은 식물에 양분을 공급하는 중요한 기능 외에도 홍수조절·대기정화·기후순화 등 우리 삶과 직결된 기능들도 있다.

따라서 흙은 소중하다. 특히 우리 국민들에게 흙은 고향으로서의 땅과 흙이라는 정신적 의미가 있다. 이 땅에서 태어났으며 조상의 피와 땀이 섞인 흙을 밟고 살아간다. 그러기에 땅과 흙에서 떠날 수 없고 인생은 흙에서 태어나 흙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 행로이다.

더 이상 '흙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한국농업과 농촌을 되살리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뜻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박상도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박상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비록 올해는 기념식 등 이날을 기리는 별다른 행사도 없었지만 흙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는 흙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해야 한다. 흙의 소중함과 중요성 그리고 흙의 공익적 가치를 다시 되새기고, 미래에 닥쳐 올 식량문제도 흙을 잘 관리하고 보존시킴으로써 전 국민이 동참하는 환경보존운동으로 승화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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