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규모 가마솥 제작 성공

괴산군 청안면 동하주물 박상진 대표

숱한 실패를 거듭한 끝에 4만명이 동시에 먹을 수 있는 50가마 분량의 밥을 한꺼번에 지을 수 있다는 세계 최대의 괴산가마솥 제작이 성공한 이후 최근 괴산읍 동부리 고추유통센터 광장에는 이를 보러 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무게 43.5톤, 두께 5㎝, 솥 둘레 17.85m, 높이 2.22m, 지름 5m의 제원을 가진 세계 최대 규모의 괴산 가마솥.

지난 7월 27일 오전 10시 괴산군 청안면 동하주물 공장 안은 가마솥의 운송과정을 취재하려는 보도진들과 이를 구경하러 온 지역주민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동원된 지게차 2대는 13.5톤 무게의 가마솥 뚜껑을 양쪽에서 받쳐들고 공장 밖으로 나오다 무게중심이 흐트러지자 쇠사슬을 솥뚜껑의 고리에 걸어 지게차에 연결한 뒤 다시 정문 높이만큼 치켜 들어 대기하고 있던 트레일러에 옮겨 실었다.

이어 30톤 무게의 본체는 지게차로도 드는 것이 불가능하자 결국 동하주물의 담벼락과 정문을 차례로 부순뒤 밖으로 꺼내졌으며, 2백톤 무게의 크레인으로 들어 트레일러에 옮겨싣는 과정은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을 조바심치게 했다.

가마솥이 경찰의 호송아래 목적지인 괴산읍 동부리로 향하자 도로변에 있던 청안면 주민들은 전국, 아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가마솥이 청안면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며 이의 행차(?)를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한시간여만에 25km 떨어진 고추유통센터에 도착한 가마솥은 트레일러와 지게차, 호이스트의 밀고 당기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초대형 화덕에 가까스로 안치됐다.

이날 가마솥의 운송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두지휘하여 화덕에 안치시킨 사람은 가마솥을 직접 제작한 동하주물 박상진(50) 대표.

기자는 숱한 실패를 거듭한 끝에 가마솥을 만들어 괴산군민에게 넘겨준 그를 만나 그동안 제작과정에 얽힌 못다한 사연을 들어보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실은 이보다 앞서 부산 삼강사라는 절에서 커다란 가마솥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솥은 만들 수 있어도 이를 운반해가는 과정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자 스님이 포기를 했는데 이같은 이야기를 전해들은 김문배 군수와 김인환 의원이 세계 최대의 가마솥 제작을 의뢰해 왔다는 것.

박씨도 괴산군이라면 거리가 가까워 운반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해 가마솥 제작을 시작했다.

고향이 제천인 그는 36년간 주물공장을 돌아다니며 오로지 한 우물만을 파온 쇳물 인생의 장인(匠人)이었다.

14년전 청안면에서 동하주물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던 그는 괴산군에서 사업자등록증을 냈고, 이곳에서 먹고 살 정도의 작은 여유는 생겼기에 몇천만원 정도라면 솔직히 가마솥을 만들어 군에 기증할 의사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평생을 가마솥만 만들며 살아왔음에도 난생 처음 만들어 보는 세계 최대의 대형 가마솥은 생각만큼 녹록하지 않았다. 그 결과 주입 3회와 용탕 5회 등 8회에 걸친 실패를 거듭하는 사이 그에게도 안팎으로 시련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당장 부닥친 일은 금전적인 문제, 처음에는 1억원이면 충분하다고 괴산군에 큰소리(?)를 쳤지만 한번 실패할 때마다 5천만원에서 8천만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다.

군에서는 줄만큼 다 주었다며 난색을 표하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자금마저 바닥이 나 더 이상 돈도 빌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금새 5억여원이 넘는 개인 경비가 가마솥 제작에 끝도없이 들어갔다.

"이래도 망하고 저래도 망할 바에야 가마솥이나 만들어놓고 망하자는 것이 당시의 솔직한 제 심정이었어요."

가마솥 제작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동안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하고 있다.' '혈세를 낭비하는 무모한 도전을 즉각 중단하라.'는 요구가 이어지는 등 언론을 비롯한 지역민들이 쏟아내는 비난을 박씨가 감내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어떤 신문은 박씨의 제작과정을 지켜본 뒤 "소규모 설비시설로 수십톤이 넘는 솥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경승용차 제조라인에서 초대형 덤프트럭을 만들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무모한 행동"이라며 "괴산군은 주먹구구식의 솥제작 공정을 당장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어렵사리 솥뚜껑 제작은 성공했으나 이번에는 본체를 만들기 위해 쇳물을 부으려다 용선로에 문제가 생겼다. 이의 해체작업을 하려는 도중 쇳물 일부 조각이 물에 닿으면서 파편이 튀어 직원 3명이 3도의 화상을 입고 후송되는 최대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공무원노조는 물론 반대파들은 가마솥 제작을 사업전반에 걸쳐 재검토해야 한다며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박씨는 아내에게 보험을 해약하게 하고, 가게를 판 돈까지 건내 받아 마지막으로 본체 제작에 나섰다.

2005년 5월 29일 오전 8시 외부에 일체 알리지 않고 청안 출신 김인환 의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용광로에 용해를 넣고 32톤 가량의 쇳물을 녹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어 오후에는 주형틀 내의 습기를 완전히 제거한 상태에서 쇳물을 붓는 작업을 시도한 결과 아무런 폭발 없이 쇳물이 거푸집 주형틀로 흘러들어가면서 잉여분이 자연스럽게 넘쳐흐르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써 용탕 5회, 주입 3회라는 시행착오를 거쳐 지름 5.57m, 무게 43.5톤 가량의 세계 최대 규모 가마솥 제작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이다.

거푸집을 짜는데에만 1억원이 들어갔고, 숱한 실패를 거듭하는 속에서 5억원의 적자를 보았지만 박씨는 지금 어디에도 하소연 할 곳이 없다. 스스로 1억원이면 제작이 가능하다고 큰 소리를 쳤던 때문이다.

수익여부를 떠나 반드시 가마솥 제작을 성공시키겠다는 장인정신으로 실패에 따른 보완을 거듭해 쇳물의 압력에 의한 틀 구조 손상을 막고, 가마솥 틀안에 발생되는 가스 배출구 수십개를 설치 하는 등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한 결과 가마솥 제작은 성공했으나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빚더미 뿐이다.

가마솥을 운송하던 날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가마솥을 안치시키는 작업을 진두지휘하여 모든 일을 마친 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장인정신의 승리라고 해야 할까.

그날 이후 그는 앞으로 괴산 가마솥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자연인으로 남고 싶다면서 쓴소주를 들이킨 뒤 무대 저편으로 쓸쓸히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 추진위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가마솥의 성공을 자축하며 반사이익에 흠뻑 젖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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