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에 잠기다
사유에 잠기다
  • 중부매일
  • 승인 2020.04.0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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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이영희 수필가

생각이 많아졌다. 봄꽃은 피어나도 코로나19로 인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되어서다. 무슨 교훈을 주려고 이다지도 오래 질척거리는가.

코로나19 사망자가 이탈리아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을 보며, 해외여행 자유화 붐이 일던 90년대 그곳 여행이 떠올랐다. 조상들이 물려준 찬란한 문화 관광수입으로 힘들이지 않고 살아가는 낙천적인 그들이 부러웠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비빌 언덕도 없이 맨땅에서 헤딩하며 악착같이 살아온 민족이 아닌가.

고색창연한 성당 사이 대운하에서 노를 저으며 산타 루치아를 열창하던 모습과 오징어 먹물 파스타가 먼저 떠올랐다. 검은 보랏빛 파스타보다 오징어 비린내가 먼저 들이닥쳐 도저히 포크를 댈 수 없었다. 맛있다며 같이 간 일행이 내 것까지 다 먹은 것은 아직도 신기하게 여겨진다.

'여행은 흥미롭게도 지리적이라기보다 심리적인 활동으로 읽을 수 있다. 외적인 여정은 내적으로 욕망하는 여정의 은유다.'라고 알랭 드 보통은 말했다 그런 성향 때문인지 여행객들은 유난히 식도락에 집착한다. 프랑스에서는 달팽이 요리를 먹어야 하고 태국에서는 생사탕, 중국에서는 산쯔얼을 꼭 먹어야 한다고 한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산쯔얼을 한 번 먹어보자고 했다. 오래전 예약을 하지 못해서 그냥 오며 들은 그 요리 이야기는 기겁을 하게 했다. 산쯔얼은 직역을 하면 쥐가 세 번 찍찍거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금방 나아서 털도 없는 알 쥐를 먹는다고 한다. 젓가락으로 집을 때 한 번, 소스에 찍을 때 한 번, 입에 넣어 씹을 때 한 번 해서 세 번을 찍찍거리는 것을 즐긴다니 참 끔찍하다. 쥐를 부화한 새의 새끼같이 생각한다니 혐오스럽다. 이렇게 먹는 것을 부의 상징으로 여겨 왔으니 중국에서 박쥐 요리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사람들은 습성을 쉽게 바꿀 수 없다. 대개 어른이 되어도 어릴 때의 음식을 즐겨하지 않는가. 하여 네 발 달린 것은 의자만 빼놓고 다 먹는다는 말을 한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는 박쥐와 중간 숙주인 천산갑을 통해서 인간에게 전파되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그 당시 우한 시장에서 박쥐를 취급하지 않았다고 발뺌하지만 그것은 박쥐의 속성과 비슷한 이야기이다.

그루잠이 들었던가. 휘어 이익, 찌이익 찍. 단춧구멍만큼 찢어진 사악한 눈의 박쥐인지 쥐였는지 모를 게 방향을 잃은 듯 마구 파닥 거린다. 날개를 휘저을 때마다 클럽의 사이키델릭 조명같이 순간 번쩍이다가 노려보곤 어느새 사라지곤 한다.

금빛 광채의 왕관을 쓴 재판장이 피고인 박쥐에게 정숙하라고 주의를 주며 최후 진술을 하라고 한다. 박쥐는 그 조그맣고 사악한 눈을 희번덕거리며 먼저 좌중을 압도한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희들은 이제껏 인간들의 식도락을 위하여 온 육신을 아낌없이 보시하고 해충을 한 마리 남김없이 소탕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공덕을 잊은 채 식도락을 즐기고 대자연을 파괴하여, 저희들이 살아갈 환경을 훼손하였습니다. 억울해서 최근 몇 달간 통곡의 밤을 보냈음을 현명하신 혜안으로 통찰하여 주십시오."

최후 변론을 들은 뒤 왕관만 보이는 재판장이 기상천외한 판결을 내렸다.

"큰 재해가 일어나기 전, 반드시 작은 사고와 징후들이 존재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을 지혜로운 인간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난번 사스와 메르스로 1차 경고를 하였다. 그럼에도 식도락에 빠져 이를 무시한 것은 물론, 개발이란 이름으로 자연을 계속 파괴하여 이런 결과를 초래하였다. 인류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다. 탕 탕 탕~ "

당연히 전 세계의 박쥐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판결을 기대했다. 그러나 재판장은 원고인 인류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뒤집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새로 나올 명 판결 신사전에 오를 세기적 판결이라고 박쥐들이 쾌재를 부른다.

때맞춰 김정은이 생물학전을 준비한다는 뉴스가 고막을 찢는다. "젠장" 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으나 입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대신 옆에 자던 죄 없는 남편을 쳤는지 무슨 꿈을 그리 요란하게 꾸느냐고 깨운다. 꿈이라서 참 다행이다. 인간과 박쥐는 상호 공생을 하고 생물학전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예지몽인지, 다시 사유에 잠긴다.
 

이영희 수필가
이영희 수필가

약력

▶1998 '한맥문학' 신인상, 2018 청주시 생명글자판 당선, 26회 동양일보 소설부문 당선,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청풍문학회 회장 역임
▶수필집 '칡꽃 향기', '정비공'
▶청주시 1인 1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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