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 마련하고 처벌 강화해야"

박아롱 변호사가 'n번방' 사건에 대한 디지털 성범죄 처벌과 입법을 통한 문제 해결 방안 등을 설명하고 있다. / 신동빈

디지털 성범죄가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관대한 성문화와 왜곡된 성의식이 'n번방'이라는 괴물을 만들었다는 게 지배적이다. 성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범죄를 근절하고 예방하는 효과는커녕 되레 범죄를 확대·재생산하는 악순환을 가져왔다. 아동·청소년의 성 착취물을 만든 뒤 이를 텔레그램 등에 유포한 'n번방' 사건은 삐뚫어진 성의식을 가진 성범죄자들의 그릇된 행위로 치부하기보다는 사회적 책임이 더 크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번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과 입법을 통한 문제 해결, 피해 회복 등을 박아롱 변호사를 통해 법률적 관점에서 풀어봤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최고조에 달했다. 현행법으로는 또 다른 '조주빈' 등장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어떤 입법이 이뤄져야 하는가.

-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약칭 '아청법') 제13조 제2항은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기 위해 아동·청소년을 유인하거나 성을 팔도록 권유한 자'를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으나, n번방 사건처럼 성착취를 위해 유인하는 행위를 직접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아동복지법 제17조 제2호가 '아동에게 음란한 행위를 시키거나 이를 매개하는 행위 또는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 등의 성적 학대행위'를 금지하면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으나, 성착취 직전 단계에 해당하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처벌하는 규정은 부재한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착취 등 영상이라는 것이 일단 제작만 되면 순식간에 무차별적으로 유통될 가능성이 크므로, 영상이 제작되기 전의 행위에 관한 구성요건을 구체적으로 정해 엄벌에 처함으로써 영상 제작 자체를 차단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동·청소년과 채팅을 하면서 성적인 사진을 보내라고 요구하거나 매수하는 행위, 성착취를 목적으로 아동·청소년을 유인하는 행위, 컨텐츠 소지와 배포에서 나아가 다운로드를 받지 않고도 컨텐츠를 시청하거나 링크 등을 공유하는 행위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디지털 컨텐츠의 다양한 공유, 재생 방법에 대한 개개의 처벌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행법에 의하면 사진이나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동·청소년'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 음란물 소지죄 등이 성립되므로, 만약 실제로 등장인물이 아동·청소년이었더라도 행위자가 그 사실을 인식할 수 없었다면 아청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 아청법의 입법 목적을 볼 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되는 표현물' 외에 실제로 아동·청소년이 나오는 표현물까지 처벌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수사당국이 '조주빈' 일당에 대한 범죄단체조직죄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 범죄단체조직죄란 '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목적으로 단체 또는 집단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 또는 그 구성원으로 활동한 사람'에 대한 처벌 규정이다. 만약 n번방 사건에 이 죄명이 적용된다면 조주빈을 비롯한 n번방 운영자는 물론이고 단순히 관람만 했다고 주장하는 유료 회원들에 대해서도 주범인 운영자들과 동일한 혐의를 적용할 수 있으므로, 아동·청소년 음란물 소지죄만 적용될 경우에 비해서 훨씬 무거운 처벌이 가능하다. 다만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구성원, 공동의 목적, 시간적인 계속성, 최소한의 통솔체계 등이 갖춰져야 하고, 여러 명이 한꺼번에 범행을 모의하거나 이에 가담하는 모든 형태가 범죄단체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n번방 사건의 경우 이러한 요건이 갖춰졌다고 볼 수 있는지에 관해 논의가 분분한데, 조주빈의 박사방을 예로 들어본다면, 우선 운영자 조주빈과 조주빈을 따르는 관리자들과 직원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조주빈의 명령에 따라 피해자들의 개인정보를 알아내고, 피해 여성들을 찾아가 협박을 하거나 강제추행, 강간 등의 범행을 저지르는 등의 행위를 했으며, 유료 회원들이 낸 회비를 수거하는 역할 등을 분담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을 볼 때 조주빈과 박사방의 운영진들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범죄단체를 운영했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 그렇다면 박사방 등 대화방에 들어가 영상 등을 관람한 유료회원들도 조직원으로 볼 수 있을지도 문제가 되는데, 안타깝게도 이들은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하고 운영진이 제공한 영상을 관람한 데 불과하므로 이들에게까지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제작하거나 유포한 것이 아니라 시청만 한 'n번방' 참가자들은 어떻게 처벌되나.

- 유료 회원이 그 대상이 '미성년자'인지 아는 상태에서 미성년 피해자들의 나체 사진, 동영상 등의 음란물을 공유받고 이를 다운로드해 시청, 소지한 경우에는 아청법 위반으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컴퓨터나 휴대폰에 다운로드받았던 영상 등을 이미 삭제했다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디지털 포렌식을 통하여 복구가 가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현행법에 의하면 사진 또는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이 미성년자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거나, 다운로드는 받지 않고 정말 단순히 관람만 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처벌의 공백이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러한 유형에 대한 금지 및 처벌 규정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조차 없다고 한다. 맞는가.

- 일반 성범죄에 대하여는 양형기준이 마련돼 있으나, 디지털성범죄 유형의 경우에는 아직 양형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성범죄의 양형 기준에 대한 요구가 큰 상태인데, 최근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대법원 양형위원회 김영란 위원장을 만나 디지털 성범죄 피해의 특수성이 반영된 양형기준이 시급히 설정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고 한다. 여성가족부는 '양형시 피해자 연령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 디지털 성범죄는 초범 및 상습범의 차이,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의 정도나 피해 정도의 판단에 있어 일반 범죄와는 그 인식을 달리 해야 한다는 점, 유포 범죄에 대하여도 엄격한 양형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특히 검토하여 줄 것을 제안했다.

박아롱 변호사가 'n번방' 사건에 대한 디지털 성범죄 처벌과 입법을 통한 문제 해결 방안 등을 설명하고 있다. / 신동빈

▶신형 범죄를 저절히 다를 만한 법체제가 구성돼 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어떤 체제를 갖춰야 하는가.

- 기존에는 아청법과 아동복지법,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에관한법률 등에서 산발적으로 디지털성범죄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존의 법체계로는 따라갈 수 없는 신종 디지털범죄가 속출하고 있고, n번방 사건을 통해 드러난 것과 같이 디지털 방식을 이용한 성범죄는 성폭력범죄의 주된 유형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여러 법에 흩어진 디지털 방식의 성범죄 및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규정을 하나의 법에 모으고, 구성요건을 최대한 세분화함으로써, 범죄의 발전 속도를 법이 최대한 따라잡으려 노력해야 한다.

디지털 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현재 피해자 지원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범행 대상이 될 수 있고, 한번 사진이나 영상이 퍼지기 시작하면 그 파급력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또한 어찌어찌 범인을 잡고 영상 등을 삭제시킨다고 하더라도 미처 찾아내어 삭제하지 못한 영상 등이 매체에 버젓이 남아 나돌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처럼 피해자의 방어가 지극히 어려운 데다 가해자조차도 범행의 결과를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 어떤 범죄보다도 피해자 보호의 중요성이 크다. 현재 정부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특별지원단을 조직해 피해영상물 모니터링 및 신속 삭제, 해바라기센터 등을 통한 심층심리치료, 성폭력상담소 등을 통한 1대 1 상담 및 수사조력, 전문변호인단 및 피해자국선변호사의 법률상담 및 소송 등 법률지원 등을 하고 있고, 이러한 서비스는 원칙적으로 모두 무료로 제공된다고 한다.

▶피해자에 대한 피해 회복 및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이 필요한 게 아닌가.

- 현행법에 따라서는 처벌 규정의 일부 공백, 양형 및 위자료(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산정 기준의 부족 등으로 피해자들이 만족할 만큼 응보가 이뤄지거나 충분한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처벌 면에서는 새로운 입법과 양형기준의 강화가 필요하겠고, 손해배상의 측면에서는 위자료의 기준을 현실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 실질적인 피해의 회복이 이뤄지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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