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륵 탄생지이자 국악 발상지는 '제천 청풍'

[중부매일 서병철 기자] 제천 청풍이 악성 우륵(于勒)의 탄생지로, 그 예맥을 계승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1893년 청풍승평계의 율원이 고전음악을 교련한 국악단의 효시였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제천지역의 향토사가 류금열(65)씨는 지난 4월 발간한 '청풍성열현인악성우륵(淸風省熱縣人樂聖于勒)'책자에서 1893년 우륵의 예맥이 흐르는 (제천)청풍지방에서 전국에서 최초로 국단악체인 청풍승평계가 조직됐다고 강조했다.

즉, 청풍지방이 관현타악기(管絃打樂器)를 교련한 전통국악의 고장으로 전승했다는 것이다.

우륵(于勒)의 고향인 청풍명월(淸風明月)의 본향에서의 음악 향연은 누구나 창작하고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싶은 국악의 발상지라는 의견도 보였다.

우륵의 예술 혼이 깃든 청풍이 국제적인 음악도시로 승화 발전할 때 식민사관을 극복하여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지남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에 기자는 류 씨를 만나 우륵(于勒)에 관해 자세히 물어봤다./ 편집자

 

'청풍성열현인악성우륵(淸風省熱縣人樂聖于勒)'책자를 편찬하게 된 동기는.

- 1969년 '제천군지'에 우륵(于勒)은 성열현 지금의 청풍인(淸風人)으로 정립했지만, 1988년 '제천제원사'에 가야국 고령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이후 2004년 '제천시지'에는 가야국 성열현에서 살았다고 수록해 역사적인 인물의 탄생지에 대해 정체성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총독부 수사관 스에마쓰야스카즈(末松保和)는 '일본 서기'에 신공황후가 삼한정벌의 식민역사를 한반도에 토착하기 위한 방편으로 임나와 무관한 우륵을 연관시켜 성열현과 성열성을 임나 사이기국으로 날조하여 지금의 의령으로 비정했다.

한국학중앙원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스에마쓰야스카즈(末松保和)의 식민학설을 정설로 수용한 임나일본부설을 불식하기 위해 국민신민고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악성 우륵을 청풍인으로 정립하기 위해 '청풍 성열현인 악성 우륵의 사료집성 2권 (2013)', '임나왜곡사 4권(2017, 2018), '임나일본부설 사국시대 전후기소가야국연맹 변조화 허구성 고찰(2019)'등을 발간했었다.

이번에 '청풍성열현인악성우륵(淸風省熱縣人樂聖于勒)'을 편찬하게 된 것은 의령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을 수용하면서까지 우륵을 선양하고 있는 왜곡을 불식하기 위함이다.

악성 우륵(于勒)을 청풍인(淸風人)으로의 정립이 관철돼야 하기 때문에 본 책자를 통해 청풍(淸風)지역이
명실상부한 국악의 발상지로 발전을 기대한다.

 

책자의 주요 내용은.

-악성 우륵이 가야국에서 551년에 신라에 귀화한 절대 편년을 기준으로 우씨(于氏)의 시조와 본관을 탐구해 중국의 귀화 성씨를 불식시켰다.

황룡국(黃龍國)의 국왕인 우인(于仁)의 후손이 고구려 왕조에서 대거 활동한 대성족을 밝혔다.

또한 고려 태조가 우(牛)를 우(于)로 고친 목천 우씨(木川于氏)는 절대 편년에서 우륵과 무관한 성씨로 입증했다.

우인(于仁)의 후손인 고구려 선왕(仙王)으로 존칭한 우소(于素)는 제나패자(提那沛者)로 분파하여 도처에 거주지로 나타나 우륵의 뿌리는 우인(于仁)의 후손으로 분석했다.

우륵의 고향은 '삼국사기'에 성열현(省熱縣)은 청풍에 백제 성열성(省熱城)이 현존하고, 고구려 중천왕 5년(252)에 죽령을 하사했다.

신라인의 귀환시킨 죽령에 인접한 청풍강 유역에 우 씨 일가족이 세거하면서 우륵(于勒)을 낳은 고향으로 주장했다.

우륵(于勒)을 임나일본부설의 프레임으로 임나 사이기국인(斯二岐國人)의 식민학설은 우륵의 뿌리를 고증하여 왜곡이 불식할 것으로 기대했다.

신라 진흥왕 12년(551)에 낭성 하림궁에서 우륵이 창작한 하림조는 '악학궤범'에 청풍체 하림조는 청풍지방의 음악성으로 송방송 박사는 고증했다.

청풍(淸風)은 우륵의 탄생지로 그 예맥을 계승하기 위하여 전국 최초로 1893년 청풍승평계의 율원이 고전음악을 교련한 국악단의 효시이다.

한국 음악은 제천(祭天)의 영고(迎鼓)와 동맹(東盟) 등 제례악이 효시이다.

고구려의 가무악은 선사(仙師)가 전수한 선인주악(仙人奏樂)은 각국에 전파한 것으로 우륵을 도인으로 일컬은 것은 선가의 가문과 일관성을 주장했다.


 

류금열씨 인터뷰

"삼국항쟁시대 백제 7성의 하나로, 성열성(省熱城)은 지금의 제천시 청풍면에 웅거한 사실에서 우륵(于勒)이 악사로 활동한 가야국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청풍인(淸風人)으로 정립해야 할 국가적인 명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제천지역의 향토사가 류금열(65)씨는 "지금의 제천시 청풍면 청풍문화재단지 성열성(省熱城)에서 우륵(于勒)이 탄생해 가문의 선도(仙道)와 기예를 조기에 습득한 뒤 국경을 초월, 음악을 전파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어 "우륵이 청풍강 유역에 기거할 무렵 신라 진흥왕은 제천에 백제의 금현성과 단양에 고구려의 도살성을 점령했었다"며 "제천지역 백성들은 의림지를 축조한 우륵을 추모하기 위해 우륵당(于勒堂)에 위패를 봉안해 춘추(春秋)로 제사도 지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이 한국의 영구적인 식민통치의 정한론(征韓論)으로 임나일본부설을 날조 왜곡한 식민학설을 정설로 수용해 우륵을 선양하고 있다"며 "매년 학술대회와 전국적인 가야금 경창대회를 개최하며 식민사학이 완전히 토착화 됐다"고 말했다.

류 씨는 "이러한 식민사학에 관해 앞으로 제천에서 청풍 성열현인을 선양하는 동시에 재판을 해서라도 한국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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