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의 힘
한국야구의 힘
  • 중부매일
  • 승인 2020.05.2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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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문학]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경영부장

방망이와 공을 가지고 경기를 만들어 발전한 것이 '야구(baseball)'다. 야구는 미국의 대표적인 스포츠중의 하나로 1860년대부터 야구가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하였다. 1869년 '신시내티 레드 스타킹스' 라는 최초의 프로팀이 창단되었으며 1875년에는 연봉상한제를 도입한 내셔널 리그가 창설되었다. 1882년에는 아메리칸협회가 창설되었고, 1901년에는 이를 전신으로 하는 연봉무한제의 아메리칸 리그가 창설되어 양대 리그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1903년에는 양 리그의 우승 팀간의 승자를 겨루는 월드 시리즈가 치러졌으며, 1933년에는 올스타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야구실력은 쿠바를 빼놓을 수 없다. 초창기 야구는 미국, 캐나다, 쿠바의 3개국이 국제적인 경쟁을 했고, 쿠바는 1930년대부터 세계최강의 실력을 자랑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러한 쿠바의 야구실력은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야구의 실력은 쿠바가 강국이지만, 프로리그의 마케팅과 경영의 강국은 미국인 셈이다.

'野球(야구)'라는 명칭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독음을 우리도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야구의 도입초기에는 '타구(打球)', '격구(擊毬)' 등 다양한 용어로 사용한 적이 있고, 중국의 경우에는 '봉구(棒球)'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한국야구사'(1999)에서는 1905년 당시 미국인 선교사인 질레트가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친 것이 시초로 기록되어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이미 1896년 4월 23일 한성부에 거주하는 미국인들과 미국 해병대원들의 친선경기가 있었다고 '독립신문'의 영자판 4월 26일자에 보도되었고, 이 신문의 6월 25일자에는 6월 23일에 훈련원에서 미국으로 귀화했던 서재필이 미국명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이라는 이름으로 6번 타자, 중견수로 출장해 2득점을 했다는 보도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팀으로 구성된 최초의 야구경기는 1906년 2월 11일에는 훈련원에서 YMCA와 독일어학교팀 간의 경기다. 그리고 1909년 '황성신문' 3월 21일자에는 '야구단 운동가'라는 노래가 소개될 만큼 야구의 인기가 있었다는 기사가 있고, 지금의 서울 종로 조계사 자리고 당시 보성학교에서 학교간 야구경기가 있었다다는 점에서 일제강점기에도 야구는 인기스포츠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는 달리 '하는 야구'보다는 '보는 야구'가 더 발전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고교야구는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모았다. 특히 1970년대에는 고교야구가 열리는 동대문야구장이 매진될 정도로 최고의 인기스포츠였다. 이러한 고교야구의 인기는 1982년 한국프로야구리그가 출범한 이후에도 한동안 인기를 누렸다.

이러한 배경에는 제5공화국 출범과 더불어 3S정책(Screen, Sex, Sports)의 일환으로 프로야구 출범이 급조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청와대는 정부 보조가 없는 계획을 구상했는데, 그 방법으로 대기업이 야구단을 하나씩 맡도록 반강제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지역연고를 두고 있는 대기업 총수들을 고려해 수 십개의 기업들을 후보군에 올려놓고 최종 프로구단은 충청도 OB 베어스, 전라도 해태 타이거즈, 대구-경북 삼성 라이온즈, 인천-강원-경기 삼미 슈퍼스타즈, 부산-경남 롯데 자이언츠, 서울 MBC 청룡 6개구단이 출범했다.

이러한 프로야구는 출범이후 90년대 후반까지 지역 갈등을 조장하고 한풀이와 화풀이 야구장으로 불릴 만큼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주춤하던 프로야구시장은 박찬호와 김병현의 해외진출로 국민들의 야구에 대한 사랑이 다시 응집되기 시작했다. 특히 2002년 월드컵 축구에서의 응원문화와 스포츠만이 줄 수 있는 서스팬스를 맛본 국민들은 이 분위기를 야구장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팬들의 경험이 다시 프로야구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야구장으로 몰려가 응원문화와 더불어 축제를 만들어내며 프로야구를 일으켜 세웠다.

허건식 체육학 박사·WMC기획경영부 부장
허건식 체육학 박사·WMC기획경영부 부장

최근에는 코로나-19영향으로 중단된 각종 스포츠경기중에 한국 프로야구는 가장 먼저 개막해 미국에도 중계하는 기회를 얻었다. 거대 프로야구시장을 가진 미국이 한국의 프로야구에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에 발맞추어 한국프로야구 팬들은 또다시 일어섰다. 온라인 관람문화와 블로그와 SNS의 열풍, 그리고 팬들과 구단이 만들어가는 응원문화를 안방과 스마트폰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125년의 야구역사를 가진 우리나라가 팬들에 의해 또다시 새로운 스포츠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야구 팬덤(fandom)이 한국야구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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