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개봉해서 누적관객수 기준으로 935만명이 관람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최근에 미국에서 10부작 드라마로 제작돼 방영중인데 내용은 이렇다.

지구온난화로 자꾸만 뜨거워져 가는 세상. 과학자들은 지구의 온도를 낮추려는 시도를 하다가 예상치 못한 결과로 지구에 빙하기가 도래하게 되고 1001칸의 이르는 설국열차에 탑승한 사람들을 빼고는 모두 얼어죽게 된다. 꽁꽁 얼어붙은 지구에서 마지막 인류를 태우고 7년째 달리고 있는 열차. 열차가 멈추게 되면 열차안의 온도를 조절하는 장치의 균형이 깨지면서 모두가 위험에 처하게 되기 때문에 열차는 지구를 순환하며 계속해서 달릴 수 밖에 없다.

열차의 앞쪽으로는 고액의 탑승권을 지참한 사람들이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반면, 꼬리쪽에 있는 열차칸에는 열차표를 구입하지 못해서 무단으로 탑승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데 과거 피아노 조율사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이반 할아버지는 꼬리쪽 탑승객이다. 84세로 열차내 최고령자인 그의 생일을 맞아 사람들이 축하해 주는 자리에서 한 사람이 그에게 생일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냐고 묻는다.

그러자 이반은 이렇게 말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그리고 1시간동안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듣는 거야."

꼬리칸에는 늘 부족한 음식이 공급된다. 그런데 왜 그가 생일선물로 받고 싶었던 것은 음식이 아니고 음악이었을까?

라흐마니노프의 어떤 곡이 듣고 싶었던 것일까?

지난 7년동안 불편한 잠자리와 부족하고 부실한 음식을 먹으면서 지냈으면서도 왜 생일선물로 받고 싶은 것은 안락한 잠자리나 질좋은 먹을거리가 아니고 음악이었을까?

짧은 시간동안 너무나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때로는 너무 많이 들어서 일상이 돼버린 나의 음악 듣기가 이반 할아버지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를 생각하다보니 어린시절 처음으로 들었던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다시 듣고 싶어졌다.

팝음악에 빠져있던 시절, 당시 좋아하던 에릭카멘의 'All by Myself'라는 노래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을 차용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에 구입했던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이었다.

피아노협주곡 2번은 라흐마니노프가 엄청난 슬럼프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던 중에 만들었던 곡이지만 1901년 이 곡은 결국 그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 주게 된다. 특히 2악장, 전반적으로 느리고 서정적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속에 작곡된 곡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답다.

설국열차안에서 최고령자였던 이반 할아버지는 생일 선물로 어쩌면 이 곡이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오늘 설국열차 꼬리칸처럼 좁고 비위생적이고 불편한 장소에 있는것은 아니지만 어린시절 라흐마니노프를 처음으로 만났던 날의 기억과 설국열차 꼬리칸의 이반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이 아름답고, 느리고, 서정적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2악장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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