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1천600건 실험 …과학기술 선진화 이끈 '심장'

포항 방사광가속기 전경.
포항 방사광가속기 전경. 오른쪽의 원형이 ‘3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 왼쪽 긴 막대모양이 ‘4세대 선형 방사광가속기’

[중부매일 김미정 기자]정부의 1조원대 방사광가속기를 품에 안은 충북도와 청주시는 이제 오창 방사광가속기를 조기에 구축하고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데에 관심이 쏠려 있다. 국내 유일의 포항 방사광가속기의 운영 노하우와 초창기 시행착오를 공유함으로써 성공적인 구축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충북도와 청주시는 16일 포항가속기연구소를 직접 방문해 방사광가속기 시설 견학, 운영현황 청취 등의 시간을 가졌다. 이를 동행취재했다. / 편집자

 

고인수 포항가속기연구소장이 가속기 시설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 김미정
고인수 포항가속기연구소장이 가속기 시설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16일 충북도·청주시 방문단에는 이시종 충북도지사, 한범덕 청주시장, 장선배 충북도의장, 충북도 출자·출연기관장, 경제단체장 등 30여명이 참여했다.  / 김미정

초대형 국가 핵심연구시설인 방사광가속기는 경북 포항시 포항공대 캠퍼스 안에 위치해있다. 35년 전, 포항공대와 포스코가 국내 최초로 민간 주도로 3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를 설계·건설했다. 위탁관리는 포항공대 부설 포항가속기연구소가 맡고 있다. 3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는 1995년 세계에서 5번째로 개발·구축돼 국내 과학기술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4세대 선형 가속기는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2016년 구축을 완료했다.

◆빔라인 2기로 시작해 35기까지 늘려

포항의 3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 시설. / 김미정
포항의 3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 시설. 둘레 282m로 현재 35기 빔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김미정

1초당 30만㎞ 속도. 방사광가속기는 빛의 속도로 가속된 전자가 방향을 바꾸면서 방출하는 빛(방사광)을 활용해 물질의 구조를 분석한다. 둘레 282m의 3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는 현재 빔라인 35기가 가동중이다. 단일 파장의 X선만 나오는 선형과 달리 원형 가속기는 적외선, 자외선, X선 등 다양한 파장의 빛을 방출해 35개의 실험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충북방문단이 찾은 16일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빔라인 가동이 멈춰있었다.

원형 가속기는 사실 원형이 아닌 24각형 구조다. 15도씩 24세트의 시설로 구성돼있다. 노후화로 2009~12년 3년간 성능개선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충북은 오창테크노폴리스산단 54만㎡ 부지에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를 건설할 예정으로, 포항 원형 가속기보다 2.8배 크고 1억배 밝고 1천배 빠른 속도가 될 전망이다. 부지도 4배가 넓다.

1.1㎞ 길이의 가속관이 막대형태로 놓여져있는 4세대 선형 가속기는 X선 자유전자 레이저를 발생시키는 방식이다. 선형이라 빔라인은 1기다.

원형 가속기는 빔라인 2기로 시작해 현재 35기로 늘었다. 빔타임 배정 경쟁률은 50% 수준. 충북은 10기로 시작해 단계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고인수 포항가속기연구소장이 가속기 시설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 김미정
고인수 포항가속기연구소장이 선형 가속기 시설을 설명하고 있다. / 김미정

고인수 포항가속기연구소장은 "빔라인 1기를 늘리는 데 2년 정도 걸리고 비용은 90년대 초반에는 1기에 20억~30억원이었는데 지금은 70억~100억원이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고 소장은 "4세대 가속기는 전 세계에 5대가 있는데 다른 국가들의 목표가 '포항의 수준을 따라와라'일만큼 포항이 세계 최고의 안정도를 갖고 있다"며 "중에너지영역의 실험지원이 가능한 현존 유일한 시설"이라고 자랑했다. 이어 "3세대가 '백화점'이라면 4세대는 백화점 옆에 붙은 '명품관' 개념"이라고 빗대 표현했다.

◆산업체 활용 11%삼성·포스코 최다

포항의 4세대 선형 방사광가속기 시설. / 김미정
포항의 4세대 선형 방사광가속기 시설. 1.1㎞ 길이의 가속관이 직선으로 놓여져있다./ 김미정

한해 평균 1천600건의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매년 500여편의 SCI급 논문이 발표되는 것이 성과다.

이중 산업체 이용 비율은 11%. 업종은 반도체, 화학, 소재 등에 집중됐다.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해 반도체 결함 분석, 에너지 재료 분석, 고효율 타이어 개발, 백신 개발 등이가능했다. 포스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화학, 한국타이어, 효성, LG, 삼성, 종근당 등이 주로 이용했다.

고 소장은 "90년대 후반에 삼성전자가 휴대폰, 통신칩을 만들면서 불량품이 많이 나와서 고민했는데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해 납땜 불순물을 찾아내 불량률을 70%에서 10%로 낮출 수 있었다"고 제시했다.

이용료는 1일 10만원. 기업은 비밀유지조건으로 1일 300만원이다. 이용료 수익은 한해 3억원 정도다.

충북에 구축될 방사광가속기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산업용 지원 역할이 커져 산업용 빔라인 비율이 30%에서 최대 50%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4세대 건설에 70여개 중소기업 참여

포항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 구축사업 참여업체 70여개사를 명시한 벽면 설치작품. / 김미정
포항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 구축사업 참여업체 70여개사를 명시한 벽면 설치작품. / 김미정

4세대 가속기관 1층 로비 벽면에는 4세대 건설에 참여한 70여개사 명패가 붙어있다. 모두 70여개사. 대부분 중소·중견기업이다. 3세대 건설 당시에는 대기업 몇곳만 참여했지만 4세대 때에는 매출 100억~1천억원의 중소·중견기업이 참여하도록 문턱을 낮췄기 때문이다.

4세대 가속기 건설 당시, 굴착과정에서 나온 흙이 덤프트럭 12만대 분량, 건물에 쏟아부은 콘크리트가 4천500세대 아파트를 지을 분량이었단다. 건설기간이 6년으로 길고 참여업체도 많아 충북이 지역업체 참여비율을 높이는 방안이 관전포인트다.

◆민간주도 건설후 국가 소유로

포항가속기연구소 내부 갤러리에 문재인 대통령,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이 다녀간 사진이 걸려있다. / 김미정
포항가속기연구소 내부 갤러리에 문재인 대통령,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이 다녀간 사진이 걸려있다. / 김미정

포항 가속기는 민간주도로 자체 건설된뒤 이후 국가 소유가 됐다는 점이 특이하다. 3세대의 경우 포스코 예산이 대거 투입됐다. 이후 총 1천500억원 건설비용중 700여억원이 부족해 정부에 손을 벌리게 됐다. 현재 운영비로 한해 547억원을 받고 있다. 4세대는 전액 정부 예산으로 지어졌다. 

고 소장은 "정부 지원을 받으면 조달청 등 절차가 번거롭고 시간이 걸려서 포스코 돈으로만 시작해 사업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운영비를 간과해 정부가 개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7년을 기점으로 방사광가속기 건물과 기계 장비는 정부, 부지는 포항공대 법인, 지상권은 과기부가 소유권을 갖는 걸로 정리됐다. 인력은 201명으로 연구원 98명, 기술원 83명, 행정원 20명이다. 
 

고인수 포항가속기연구소장 인터뷰

세계 최고 연구시설

운영비 100% 지원해야

 

고인수 포항가속기연구소장. / 김미정
고인수 포항가속기연구소장. / 김미정

"이제는 '최초'로는 안되고 '세계 최고'여야 해요. 최고의 기계·장비, 과학자들의 실험능력이 매치돼서 세계 최고의 성능을 내야 합니다."

고인수 포항가속기연구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방사광가속기를 청주 오창에 구축하는데 있어 포항가속기연구소의 30년 운영노하우, 인력 지원 등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빛'을 이용해 더 좋은 연구성과를 내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방사광가속기는 세계 1위 과학기술 경쟁력을 차지하기 위한 국가연구시설인만큼 정부가 운영비를 100% 대야 합니다. 수익을 내는 시설이 아니고 지역을 위한 시설이 아닙니다."

33년째 연구소에 몸담고 있는 그는 31년간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를 겸직했다. 포항 가속기의 성공적 운영요인으로는 포스코와 포항공대 라는 뒷배경을 꼽았다.

"포스코와 포항공대 라는 사립이지만 최고 수준의 대학과 든든한 기업, 똑똑한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 최고 수준의 시설을 운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립대학 내 시설이지만 국가의 시설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시작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력을 꼽았다. 그러면서 청주에는 인근 대전의 카이스트, 국립대인 충북대와 충남대가 있고 수도권에서 가까워 유능한 인력 확보가 수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오창에 위치한 기초과학지원연구원 오창분원의 전자현미경과 NMR(자기공명장치) 과학기자재들이 시너지를 낼 것으로도 기대했다.

충북이 롤모델로 삼을 시설로는 영국의 다이아몬드 방사광가속기, 유럽의 ESRF를 추천했다.

"영국의 다이아몬드 방사광가속기는 주변에 연구소가 있고 클러스터로 확장해가고 있어요. 유럽 7개국이 공동으로 프랑스 그래노블에 건설한 가속기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데 기관, 시설, 연구소들이 과학단지를 이뤄 유기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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