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미경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잔혹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경남 창녕의 한 도로를 맨발로 헤매던 9살 아이는 얼굴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눈은 멍들었고 발에는 화상 상처가 있었다. 지독한 학대의 흔적이었다. 사흘 뒤인 충남 천안에서는 같은 나이의 또 다른 아이가 자기 집에서 여행용 가방 안에 갇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아이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사랑의 매'도 폭력이라며 민법 915조의 부모 징계권을 삭제하는 개정안까지 발의된 상황에서 아동학대가 심각한 범죄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청와대 국민청원에서도 의붓아들을 가방에 가둬 사망에 이르게 한 천안 계모의 신상정보 공개와 엄중 처벌을 요구하거나, 아동학대 처벌 강화 및 아동보호 국가시스템 도입을 요청하는 글에 수만명이 동의하는 등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그러나 아동학대 심각성을 상기, 경각심을 제고하는 것에서 나아가 관리·감독하는 당국의 역량도 높아져야 한다.

천안 피해아동의 경우 가장 안타까움을 샀던 부분은 이미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됐다는 사실이다. 당시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은 부모와 자식을 바로 분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피해아동을 계속 학대가정에 방치하는 결과를 낳았다. 아동복지법 '원가정 보호의 원칙'에 따른 결정이다.

이 원칙은 국가가 아동이 가능한 태어난 가정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아동을 가정에서 분리하여 보호할 경우 신속히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때문에 학대가 의심되는 부모라도 자식을 즉각 분리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경우 아동을 계속 원래 가정에 맡긴다. 이번 사건에서는 결과적으로 아동을 학대가정에 다시 돌려보내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한 셈이 됐다.

'원가정 보호 원칙'의 취지는 보호자가 사라져서 발생하는 비극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현실은 가정환경 개선 여부에 대한 모니터링 없이 학대 행위자의 요구에 따라 아동을 돌려보내는 결과를 낳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체 아동학대 판단사례는 2만4천604건이었다. 이 중 학대행위 이후 별도조치 없이 원래 가정에서 보호를 지속한 경우는 82%에 달했다. 이들의 10명 중 1명은 부모에게 다시 학대를 당했고 이 가운데 24%만 분리 조치가 취해졌다.

박미경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아동보호기관과 경찰, 학교와 지자체가 촘촘히 연계된 관리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가정 내 아동학대는 막을 방법이 없다. 아동학대 정황이 드러나면 먼저 신속히 격리하고, 원가정 복귀 시에는 철저하고 엄격한 검증 절차를 밟아야 한다. 무고한 아이들이 폭력으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일이 더는 없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에 마련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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