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 흉보기
친정엄마 흉보기
  • 중부매일
  • 승인 2020.07.0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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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조영의 수필가

눈여겨보지 보지 않으면, 관심 없으면, 아니 그곳에 대해 알지 못하면 그냥 지나치는 곳에 앵두가 익었다. 이파리 사이로 언뜻 보이는 붉은 빛, 터질듯 부푼 앵두를 보니 입안에 침이 고인다. 몇 알은 떨어져 개미 밥이 되었고 그늘진 곳은 유월 볕에 불그스레하다.

코로나19로 봄이 서러워 꽃을 피우지 않았는지 예전처럼 많이 열리지 않았다. 열매도 작다. 한 알 따서 입에 넣으니 단맛보다 떫은맛이 강하여 삼키지 못했다. 바라보고 기억하는 것으로 유월을 즐길 생각이다.

친정집 뒤뜰에 커다란 앵두나무가 있었다. 울타리 깊숙이 있어 앵두꽃은 우리 식구만 보았다. 그래서 순박한 꽃은 울타리 너머로 향기를 날렸지만 농사짓기 바쁜 마을 사람들은 관심 없었다. 봄날 꽃은 어디서든 흔했다. 그즈음 엄마는 뒤뜰로 자주 가셨다. 꽃을 보러 간다고 생각했다. 그늘지고 외진 곳은 앵두나무가 꽃 피는 동안 봄이었다.

봄은 잠깐이다. 앵두꽃도 잊었다. 다시 그늘이 짙어진 우리 집 뒤뜰로 마을 아이들이 몰려왔다. 앵두가 익은 걸 어떻게 알았는지 앵두나무 주변을 에워쌌다. 한 알이라도 더 따려고 가지를 부러뜨리기도 하고 몸싸움하면서 소란했다. 아이들의 발소리에 예민해진 사람은 엄마였다. 수시로 뒤뜰로 가서 살폈고 못마땅해했다. 어떤 때는 집에 들어오는 아이를 호통처서 울리기도 하고 대문을 닫는 날도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창피하고 싫었다. 앵두가 많이 열렸는데도 나눠주지 않는 인색함이 미웠고 "나가" 라고 소리치는 목소리도 낯설었다. 그렇다고 앵두를 우리 가족만 먹는 것도 아니었다. 알이 작아서 따기 지루했고 표면이 얇아 손안에서 금방 터졌다. 떫은맛도 강하여 많이 먹지 못했다. 그래서 몰래 들어온 아이들이 땄다가 버린 것과 저절로 떨어진 것들이 짓이겨져 나무 아래는 지저분했다.

나이가 들면서 심원했던 엄마를 이해하는 마음이 넓어졌다. 엄마가 앵두나무 근처로 자주 간 것은 자투리땅을 일구어 씨앗을 뿌렸기 때문이었다. 가족의 배를 채워 줄 식량을 아이들이 짓밟아 놓을까 봐 불안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앵두만 보고, 엄마는 근처에 심어놓은 농작물을 걱정한 마음 차이를 알지 못하고 괴이하게만 받아들였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무슨 일이든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해되고 오해는 풀린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흉보는 일도 많아진다. 그립다고 생각하면 생각이 좁아지는데 흉보기 시작하면 엄마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래서 엄마와 부딪치는 기억 하나를 찾으면 아, 그리움보다 흉볼 거리가 먼저 떠오르니 나는 불효자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흉을 끝까지 보고 나면 행동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되어 공감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엄마 흉보기를 당분간 계속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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