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지효 문화부장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최근 인기몰이중인 정세랑 작가의 신작소설 '시선으로부터'가 고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 문구는 2030 여성들이 성추행 피해자와의 연대를 위해 소셜미디어에서 인용하고 있다.

작가는 주인공 '시선'이 당했던 차별과 폭력의 역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유해한 남성성'이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라 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유해한 남성성은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등에 칼을 꽂는 차별과 폭력을 말하고 있다.

성추행 논란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고 박원순 서울시장. 논란의 당사자가 세상에 없는 만큼 성추행 의혹 사건은 '공소권 없음' 상태가 됐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의 장례가 마무리되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지난 13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고소한 전 비서 측의 기자회견이 끝난 후 '#박원순_시장을_고발한_피해자와_연대합니다'라는 해시태그가 소셜미디어에 쏟아졌다. 특히 '처음 그때, 소리를 질렀어야 하고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하다. 그랬다면 지금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후회했다'는 부분에서 '여성으로서, 직장인으로서 공감한다'는 의견이 급증했다. 피해자는 시청 안 주변인들에게 당시 상황을 알렸지만 '그럴 사람이 아니다. 단순 실수로 받아들여라' 등으로 묵살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2차 가해' 등에 대한 수사 속도는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경찰은 박 전 시장이 생전에 쓰던 휴대전화를 포랜식(각종 디지털 기기나 인터넷에 있는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범죄의 증거를 확보하는 수사 기법)하기로 결정했다. 휴대전화 잠금이 풀리면 박 전시장의 생애 행적이 세상에 드러날 예정이다.

박 전시장의 죽음을 바라보며 여성단체들도 입장문을 발표하며 '이젠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단체들도 박 전시장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 많은 것 같다. 박 전 시장은 무엇보다 성평등한 가치를 앞세우고 사회적 불평등을 제거하는 활동을 실천했고, 그런 그가 그 가치를 스스로 무너트린 행동을 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점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청주여성의전화는 그의 죽음을 마주하며 '성폭력 피해를 호소한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는가? 우리 사회는 여과 없이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는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지효 문화부장.
이지효 문화부장

이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점검하며 피해자가 피해를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직과 사회 공동체가 책임이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커다란 변화의 물결 속에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그랬듯 '공과(功過)'는 분명 구분돼야 한다. 박 전 시장의 죽음에 대한 추모는 존중돼야 하지만 죽음으로 그의 잘못까지 면죄부가 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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