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온 제수음식 진열하고 땜질하듯 제사…
배달 온 제수음식 진열하고 땜질하듯 제사…
  • 중부매일
  • 승인 2005.09.1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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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콩트

호무골 지킴이 박순철

호무골을 떠나면 못 살 것으로 알고 있는 맹구씨는 아내를 폐암으로 잃고 끈 떨어진 연이 된지 벌써 5년째다.

고향집에 올 때마다 어깨가 축 늘어진 맹구씨를 측은하게 여겨 정리하고 말 것도 없는 시골 살림 정리해 서울로 가자고 몇 번이나 아들 내외가 권했지만 ‘나이가 더 들어 일 못할 지경이 되면 그때나 생각해 보겠다’며 미루고 있는 중이다.

어제 영달이는 ‘추석연휴 중 강릉에서 회사의 중요한 행사가 있다’며 아버지 맹구씨를 강릉 콘도로 모시겠다고 했다. 순풍에 돛 단 듯 부장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아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행여 자식의 출세 길에 걸림돌이 되지나 않을까 하여 맹구씨는 순순히 따라 나섰다.

나가서 명절을 보내다니, 옛날 같으면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마는 이 빠진 호랑이요. 사랑방 늙은이에 불과한 자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이 이 세상에는 없는 것 같았다.

아침이 되자 배달되어 온 제수음식을 진열해놓고 부역에 땜질하듯 제사라고 지냈다. 제사가 끝나자 영달이 내외는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며 주섬주섬 등산복을 차려입고 집을 나가고 콘도에는 맹구씨와 초등학교 일 학년 손자하고 둘만 남게 되었다.

추석 날 처갓집을 간다고 아들내외가 떠나고 나면 아내 무덤을 찾아가 술을 부어놓고, 그 간의 농사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한 잔, 아들 자랑 손자 자랑을 하다가 또 한 잔,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그 술을 모두 마시고 취하여 내려오곤 했었는데 ‘오늘은 아내가 쓸쓸해하며 자신을 기다리겠구나’ 생각 하니 목이 메어왔다.

아침도 먹지 않고 컴퓨터에 매달려 있는 손자 규성이가 배가 고플 것 같아 먹을 것을 사다줄 요량으로 집을 나선 맹구씨! 주머니에는 손자 추석빔이라도 사 입힐까 하고 참깨 두말을 판돈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방향감각도 모른 채 밖에 나와 슈퍼를 찾는 중에 충북 번호판을 단 차량이 보였다. 작업복을 입고 커다란 짐짝을 내리는 젊은이가 퍽 대견해 보였다. 다행히도 짐을 다 내리면 바로 나간단다. ‘그럼 같이 가자’며 요금도 물어보지 않고 무턱대고 차에 올라앉았다. 오로지 그 곳을 벗어나 아내가 잠들어 있는 곳에 가야겠다는 일념뿐이다.

맹구씨를 실은 용달 차량은 문막을 지나서 국도로 접어들었다. 누렇게 익은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풍요로웠지만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기사 양반 오늘 명절인데 제사는 지냈수”

“네, 첫새벽에 지내고 나왔어요. 그런데 어르신은 어떻게 혼자서 이 곳까지”

“아, 나요. 장사하는 사람이 어디는 못 다니겠수. 어제 크게 한 건 했수다. 내 오늘 요금은 서운치 않게 주리다”

“아니에요. 어차피 집에 가는 길입니다. 그 보다 시장해 보이시는 데 뭐 좀 잡숫고 가시지요. 저도 배가 고프네요”

그리고 보니까 이미 점심때가 지나 있었다.

그제야 콘도에 혼자 남아있는 손자를 생각하고 큰 실수를 했구나 했지만 이미 차를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어 있었다.

“기사양반 이 전화에 우리 아들 전화번호가 있을텐데 전화 좀 걸어주구려”

용달차 기사가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도 받지를 않는다.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하실 말씀 있으시면 제가 메시지 보내드릴 게요”

“뭐 다른 이야기는 없고, 그저 잘 쉬다 오라는 말 밖에는”

주천을 지날 무렵 장사를 하고 있는 기사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목이 말라 그러니 막걸리 있으면 한 병 주고 뭐 먹을 것 좀 주슈”

주인 여자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막걸리 한 병과 두툼한 부침개 접시를 들고 왔다.

“시장하신가 봐요. 마침 제사 지내고 남은 음식인데 그냥 드세요. 점심은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막걸리 한 병을 더 청해 마신 맹구씨는 기분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안전벨트를 맨 맹구씨의 고개가 왼쪽으로 기우는가 싶더니 어느새 드르렁거리며 코를 골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찌푸렸던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평온한 얼굴이다.

-아범아 잘 쉬었다 오거라-

고성을 향해 달리던 차안에서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 영달이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끼익 하는 마찰음과 함께 비상등을 켜고 유턴을 한다. 가속페달을 힘껏 밟는 그의 입에서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아버지!”



작가 약력 ▶충북 괴산 출생 ▶한국문인협회 회원 ▶청풍문학회 회원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충북작가회 회장 ▶현 충청도 중앙도서관 근무

저서: 수필집 ‘달팽이의 외출’(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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