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은천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육교 위의 네모난 상자 속에서 처음 나와 만난 노란 병아리 알리는 처음처럼 다시 조그만 상자 속으로 들어가 우리 집 앞뜰에 묻혔다. 나는, 어린 내 눈에 처음 죽음을 보았던 1974년의 봄을 아직 기억한다." 故 신해철님의 노래 '날아라 병아리'의 첫 도입부다.

1980년대 학교 앞에서 산 병아리들이 이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몰랐었다. 인터넷이 발달된 요즘 같으면 다양한 지식과 동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시절에는 어리기도 했지만 관련 지식을 찾기 어려웠다.

코로나19로 활동과 모임도 자제했던 4월에 병아리 부화기와 청계 유정란을 구입해서 병아리 부화에 첫 도전을 했다. 병아리는 37.5℃의 온도와 70% 정도의 습도를 유지하고 6시간 주기로 알을 조금씩 돌려주는 전란을 해줘야한다.

21일 정도 잘 관리하면 병아리로 부화된다. 갓 태어난 병아리는 35℃ 정도로 따뜻하게 해줘야 하는데 백열등을 밝혀서 간단한 육추기를 만들고 조금씩 온도를 낮춰서 실온에 적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 시절 병아리들은 아마도 보온해 주지 않아서 일찍 생을 마감했던 것 같다.

송나라 시대의 불서인 벽암록에 줄탁동시라는 말이 나온다. 알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기 위하여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이라 한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행하여지므로 사제(師弟)가 될 연분(緣分)이 서로 무르익음의 비유로 쓰인다.

처음 부화기로 병아리를 부화시킬 때 20일정도 지나니 알속에서 부리로 쪼아 작은 파각이 시작되었다. 줄탁동시의 어미닭을 생각하고 파각된 주변을 두들겨 조금씩 깨주었는데 몇 시간 후 부화에 실패했다. 도와준다는 좋은 의도였으나 결과적으로 가슴 아픈 일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에게 좋은 의도를 갖고 조언을 할 때에도 지나치면 상처만 받기 쉽다. 호감을 주는 대화 상대는 혼자서만 계속 말하지 않는다. 상대방 반응을 보며 나와 상대방 말을 조화롭게 이어나간다. 듣기와 말하기의 균형감을 갖고 대화에 임할 때 좋은 의도도 잘 전달될 수 있다.

첫 번째 부화 실패를 거울삼아서 몇 번의 부화를 더 진행했고 스스로 깨고 나오는 알은 그대로 두고 진행이 더딘 알은 파각을 도와주었다. 경험이 쌓이면서 인공 파각으로 진행한 병아리도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이은천 농협안성교육원
이은천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준비를 철저히 하면 실패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처음에는 부족하더라도 반복하면서 보완한다면 성공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병아리가 닭이 되는 시간을 함께하다보니 생명에 대한 신비가 느껴지고 나를 따르는 닭들을 보면 소중하게 느껴진다. 애정을 쏟은 정성과 시간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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