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영희 수필가

국내 커피시장 규모는 10년 전에 비해 약 3~4배가량 성장했다고 한다. 소비된 커피를 잔 수로 계산하면 약 265억 잔에 달하며 믹스 커피가 130억 잔으로 가장 많다. 1인당 연 512잔이라는 말에 내가 마신 커피 잔을 얼추 세어 보니 평균 이상이다. 하루가 다르게 커피전문점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믹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시류에 뒤처지는 것 같지만 통계를 보며 위안을 삼는다.

믹스 커피는 모 영부인이 즐겨 마셨다 하여 청와대 커피라 하고 가사도우미들이 고된 일과 후 마셔서 파출부 커피라고도 한다. 일용엄니가 나오던 양촌리에서 마시던 커피라 양촌리 커피라 불리기도 한다. 커피 설탕 크림의 삼박자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다양한 별칭처럼 각계각층의 취향을 만족시킨다. 믹스커피의 그 감미로운 위로의 맛은 원초적인 휴식을 제공한다. 그 어떤 원두커피도 대체할 수 없는 맛이다. 자부심을 갖는 바리스타가 볼 때는 한참 촌스러운 취향이라 하겠지만 기호에 격이 있겠는가.

믹스커피 프림이 몸에 좋지 않다고 하여 한때는 커피머신에 원두를 갈아서 내려 마신 적이 있다. 한동안 억지춘향을 고수했으나 그 깊은 맛을 몰라 얼마 후 이내 믹스커피로 환원했으니 못 말리는 입맛이다.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인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은 '좋은 커피는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라고 했다. 이 말을 음미해 봐도 커피는 그저 쓰고 신맛이 나는 것보다 검고 뜨겁고 쓴 맛을 품은 달착지근함이 기본인 것 같다.

책을 읽고 쓰는 것에 삶의 기쁨을 느낀다. 그러다가 조금 쉬고 싶을 때, 몇 개의 장이 끝나거나 글이 술술 풀리지 않을 때 커피포트를 꽂는다. 입이 데일만큼 팔팔 끓는 물에 믹스커피 한 잔은 감미로움을 안겨 준다. 물을 팔팔 끓여도 커피를 마실 때는 75도 정도가 최적이라는데 습관인지 식으면 밍밍한 느낌이 드니 잠재된 열정 탓인가.

여름철 장맛비가 유리창에 부딪치는 것을 바라보며 비를 머금듯 음미한다. 머지않아 낙엽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커피 잔에 눈물을 섞어 마시겠지. 애주가들이 좋아서 한잔, 속상해서 한잔 하고 핑계를 대다가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는데 대동소이한 나는 카페인 중독자가 되는 것은 아닐지.

오래전 어머니는 커피를 숭늉처럼 마시는 자식들을 보며 내가 양놈을 낳았나 하고 혀를 끌끌 찼는데 구순인 노모가 하루에 한잔은 하시는 것을 보면 커피는 습성이 있긴 하다. 시나브로 달려드는 중독성과 외화낭비가 염려되지만 코로나로 움츠려 묵언 수행하는 이때 이만한 것도 없지 싶다. 커피 한잔의 여유를 음미하며 행복함을 맛본다면 삶의 맛과 멋이 어우러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영희 수필가
이영희 수필가

약력
▶1998 한맥문학 신인상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청풍문학회 회장 역임, 충북 소설가 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18 청주시 생명글자판 당선, 26회 동양일보 소설부문 당선
▶수필집 '칡꽃 향기', '정비공'
▶충청북도교육청 방과후학교지원단장 역임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현)
▶nandasin120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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