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유난히 길었던 장마, 여러 차례 덮쳤던 태풍이 지나간 9월 하늘은 너무도 맑고 깨끗하다. 거실 창을 파고드는 아침 햇빛은 또 얼마나 찬란한지. 달력을 보니 추분(秋分)이다. 걸어서 출근했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잘 익어가는 벼와 고구마, 참깨, 대추, 감을 만난다. 석판리를 출발해 죽림동 논·밭둑과 성화동 옛 골목을 지나고, 두맹이 생태길을 걸어 산남동 사무실에 도착했다. 4.3㎞를 52분 걸렸다. 마음이 상쾌하다. 출발할 때는 썰렁했지만, 약 10분 정도 걸으니 조금씩 땀이 난다. 윗옷을 벗은 채 걸었다.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니, 힘이 솟고,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 동안에도 가끔 걸어서 출퇴근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판이 많이 연기되어 아침 시간이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걸어서 출근했던 어느 날 저녁은 택시로 퇴근하려다가 실패해서, 다시 걸어서 귀가했다. 또 어떤 날은 걷다가 버스정류장에서 집 근처까지 가는 버스를 발견해 타고 가기도 했다. 그 덕분에 오랫동안 탈 기회가 없던 시내버스 타는 법을 알게 되었다. 서울 등 대도시를 가면 주로 지하철을 타게 되지만, 내가 사는 청주에서는 주로 자가용 아니면 택시로 이동하다 보니, 버스 탈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어 더위도 물러가니, 지금껏 주 1회 정도 했던 도보 출퇴근을 늘리기로 했다. 마음도 편하고 다리도 튼튼해짐을 느낀다. 책이 손에 안 잡힐 때는 걸으면서 휴대전화로 오디오북을 듣는다. 성경도 듣고, 라디오도 듣는다. 국내의 '세바시' 강연이나 외국의 '테드(TED)' 강연을 듣기도 한다. 생각도 정리하고, 음악도 들으면서 아름다운 자연도 만끽한다. 가끔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기도 한다. 심심하지 않다. 땀 흘린 뒤의 뿌듯함도 있다. 아침운동으로 골프 연습장을 가끔 가는데, 이를 줄이고 대신 걸어서 출근하기로 했다.

일전 70∼80대 어른들을 모시고 식사를 하면서, 건강관리를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시는 모습에서 느낀 게 있다. 오래 사는 것 보다,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늦기 전에 건강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 가장 간단하고 유효한 건강 유지법이 걷기다. 아무 비용도 들지 않는다. 굳이 동행자가 없어도 좋다. 시설이나 장비가 필요치 않다. 생각해 보라. 골프,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 스키 등 흔히 하는 운동의 경우, 다른 파트너, 장비, 시설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걷기에는 이 모든 것이 필요치 않다. 걸을 수 있는 상태의 몸과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흔한 말로 '다리에 힘 빠지면 인생은 끝'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움직일 수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리 지성(知性)이 뛰어난들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체력(體力)·지력(知力)·영력(靈力) 중 가장 기본이 체력이다. 걸으면 아픈 것도 낫는다. 전에는 채 1㎞도 되지 않는 길을 차 타고 다닌 적이 많았다. 사무실에서 방송국 갈 때나 조금 떨어진 식당 갈 때, 집에서 골프 연습장 갈 때 등등. 이를 뉘우치면서, 지금은 모두 걸어 다닌다. 2킬로 이내 되는 길은 조금 일찍 나서서 걸어서 간다. 회의차 시내 나갈 때는 일단 택시로 갔다가 걸어서 돌아오기도 한다. 걸어 다녀보니, 참 몸도 마음도 상쾌하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10월 22일은 절기상 추분이지만, '세계 차 없는 날'이기도 하다. 하루라도 자동차를 타지 않아서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캠페인이다. 1995년경부터 유럽에서 시작해 우리나라도 2001년부터 환경·에너지·소비단체들의 주도 아래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항공기와 자동차 등 운송수단이 탄소 배출의 주범이 되고 있으니, 이를 줄여 지구온난화를 완화하자는 것이다. 충청북도도 지난 한 주간 캠페인을 벌였다. 전 세계는 산업화 이전보다 대기 온도 1.5℃ 상승을 막기 위해 무진 노력 중이다. 걷는 것은 이런 지구 살리기에 동참하는 일이다. 자신을 살리는 일이다. 맑고 깨끗한 하늘을 더 많이 누리기 위해서 나는 내일도 걸을 것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