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망가뜨린 후 찾아가 수리기술 몰래 배웠죠"

이상배 영심포니 대표가 수리할 첼로 앞판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이지효
이상배 영심포니 대표가 수리할 첼로 앞판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이지효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35년동안 '현악기 수리'라는 외길을 걸어오며 음악인들과 함께 하고 있는 이상배(61) 영심포니 대표. 타 지역에서 현악기에 문제가 생겨 수리했다가도 결국 다시 이 대표를 찾아온다는 것이 음악계의 설명이다. 그만큼 현악기 수리에 대해서는 충청권에서는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이상배 대표를 만나본다. / 편집자

세계적인 현악기 제작도시로 유명한 이탈리아 크레모나. 크레모나 제작학교에서 수리과정은 4년간의 제작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제작보다 수리가 더욱 난해한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악을 전공한 교수들도 악기 분해는 어려워하는 작업으로 전문수리사에게 악기를 맡기는 것은 기본이다.

이상배 영심포니 대표가 바이올린 두께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 이지효
이상배 영심포니 대표가 바이올린 두께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 이지효

이상배 대표는 1986년 3월 청주에서 영심포니를 운영하면서 악기 수리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그때만 해도 청주에는 악기점이 없었기에 악기 수리를 위해서는 서울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영심포니에서 악기를 사간 사람들에게 애프터서비스를 해주려니 수리를 배워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당시 악기수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교육기관도, 사람도 없어 이 대표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기술자를 찾아다니며 수리 기술을 습득했다.

그런데 이 대표는 광운대학교 전기공학과 출신으로 사실 음악과는 거리가 먼 전공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손재주도 있고 정확한 전기공학자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던 이 대표는 악기수리에도 두각을 보였다.

정말 알고 싶은 부분은 일부러 망가뜨려 유명 기술자들에게 급하다며 수리를 부탁해 수리과정을 어깨너머로 지켜보며 스스로 습득하기도 했다.

그러던 이 대표에게 수리 기술이 향상된 계기가 생겼다. 올드 악기가 많았던 미국을 다니며 악기 수집을 하던 중 미국에서 수리 교본을 얻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구한 바이올린 수리 교본.
미국에서 구한 바이올린 수리 교본.

이 교본에는 처음 현악기가 완성되기까지 과정은 비과학적이었지만 결과는 아주 과학적인 작품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실제 이 교본에 바이올린 음향을 분석한 연구에서 바이올린 전문가, 즉 바이올린 연주가와 전기전문가 즉 전기 공학자가 1팀으로 같이 연구해 음향에 대한 결과를 적고 있다. 현, 브릿지, 너트와의 비율 등이 수학적이고 과학적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결과였다.

미국에서 구한 바이올린 수리 교본에 있는  바이올린 해부도.
미국에서 구한 바이올린 수리 교본에 있는 바이올린 해부도.

그러니 전기공학을 전공한 이 대표에게 현악기 수리는 현악기 전공자보다 훨씬 적성에 맞고 정교하게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 수리를 맡겼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저에게 가져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줄곧 저에게 악기를 맡기는 분들이 많아졌죠."

날림으로 악기를 고쳤다면 35년동안 이렇게 꾸준히 현악기 수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 대표는 "사람이 재산"이라며 진실성을 강조했다.

1991년 청주시음악협회 창립멤버이자 초대 부회장을 역임한 이 대표는 이후 청주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바이올린의 음향에 관한 연구'로 2001년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상배 영심포니 대표가 미국에서 구한 수리교본 책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이지효
이상배 영심포니 대표가 미국에서 구한 수리교본 책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이지효

"연주를 하지는 못하지만 악기의 소리를 듣고 진동과 공명으로 악기를 파악해 악기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악기 4현의 균형이 맞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 대표는 "수리과정은 힘들지만 수리를 통해 잡음이 없어졌을때 연주자들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며 만족한 연주자들을 봤을때 뿌듯하다고 전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위암 판정을 받고 위를 대부분 절제하게 된 이 대표는 힘든 시기를 이겨내야만 했다.

"97년 IMF 때 한번의 고비를 겪은 후 위암 판정 이후 또 한번의 고비를 겪었습니다. 그때마다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자고 마음 먹고 꾸준히 달려오다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이상배 영심포니 대표가 수리할 첼로 앞판에 대해 설명하며 웃고 있다. / 이지효
이상배 영심포니 대표가 수리할 첼로 앞판에 대해 설명하며 웃고 있다. / 이지효

좋은 재료와 좋은 기술자가 어떻게 악기를 만들었느냐가 중요하다는 이 대표.

한번은 영국에 유학가 있는 첼리스트가 악기소리가 이상해 급하게 이 대표에게 연락해 전화통화로 소리를 통해 문제점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악기를 두드려 보면 그 소리로 두께를 가늠해 악기 음색을 좋게 만들 수 있다는 그는 연주자들이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늘 옆에서 묵묵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충북음악협회 감사를 역임하고 현재는 부회장을 맡고 있는 이 대표는 "서로 함께 할 수 있는 음악계가 됐으면 한다"며 "앞으로 음악계에 봉사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