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에서 수련의 경력과 실력을 말해주는 기준이 급(級)과 단(段)이다. 이러한 승급과 승단제도의 유래는 일본의 유도에서 시작되었다. 현대 유도의 효시로 불리는 강도관유술(講道館柔術)의 창시자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郞, 1860~1936)가 유술을 일본의 교과서 교육 소재로 추가하기 위한 노력으로 '유도(柔道)'로 개칭하고, 수련단계를 체계화하기 위해 바둑의 승급체계를 차용해 유도의 승급과 승단을 부여한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승급과 승단제도가 상용화되기 시작한 것은 실제 100년 정도다. 이러한 승급과 승단제도가 있기 전에는 검도(劍道, Kendo)의 칭호제도만 있었다. 지금도 검도에서는 연사(練士), 교사(敎士), 범사(範士)라는 칭호를 사용고 있고, 승단심사 이외에도 칭호심사를 별도로 하고 있다. 그러나 유도의 승급과 승단제도가 생긴 이후 검도, 궁도, 가라테, 아이키도와 같은 일본 무예뿐만 아니라, 우리의 태권도와 중국의 우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무예들이 이 제도를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9단은 입신의 단계


이러한 과정에서 무예계는 단(段)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놓고 논쟁이 일어나곤 한다. 가장 많은 논란이 유사단체들간의 실력차이 뿐만 아니라, 단에 부여되는 수(數)에 대한 해석이다. 전통적인 동양무예임을 강조하는 무예들은 10단은 9단중에 해당무예의 공로가 있는 사범에게 사망시 부여하는 명예단으로 분류한다. 그 이유는 동양에서 가장 큰 수를 9로 인식하고 10은 0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기때문이다. 이 때문에 9단을 '입신(入神)'의 단계로 보고 있고, 9단이란 자신이 터득한 무예세계에서 새로운 형(품새)를 만들어 '000류(流)'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들어 홍길동이 '길동류'를 제정하고 이를 따르는 제자들이 수련하는 도장을 '길동관(館)'으로 부르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최근 일본에서 검도 9단 심사는 사라졌다. 그 이유에 대해 전일본검도연맹은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과거 전일본무덕회와 일본무도학교 출신인 현대 검도의 창립 사범중에 생전해 있는 9단이 있고, 지금의 검도인들은 이 9단이 정립한 검도를 수련하기 때문에 유파로 간주해 9단 심사제도를 삭제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정서가 있는 반면, 국내 검도회에서는 승단제도에 9단 심사 규정은 있으나, 2000년 일본과 비슷한 시기부터 9단심사가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와 달리 태권도는 9단이 1천여명이 넘는다. 가장 공신력 있는 태권도 단증은 국기원에서 발급한 단증이다. 그런데 국기원단증 발급의 95%가량이 국내 수련생이라는 점에서 200여개국의 태권도수련생들의 단증은 누가 발급하고 있을까?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해당 지도자나 관(館)이 발행하는 단증이 주류를 이룬다. 이렇게 보면 국기원 9단 1천여명 이외에도 태권도 9단은 상상이상으로 많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태권도, 대사범(大師範)은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세계태권도본부 국기원.
세계태권도본부 국기원.

국기원 9단이 1천여명이 넘는다는 것에 대해 국제무예계는 단증의 권위와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것은 단의 가치를 가장 잘 지켜주어야 할 국기원이 승단제도는 그동안 국기원 스스로가 위상을 추락한 나머지 '단증공장'이니, '철밥통'으로 불리며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려는 것일까? 지난해 12월 3일에는 '태권도대사범(跆拳道大師範) 지정' 등을 내용으로 하는 태권도진흥법 개정이 공포되었다. 그리고 올해 12월 4일부터 시행하게 됐다. '대사범'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Grand Master'다. 한 유파의 '관(館)'을 이끄는 '관장(館長)'의 의미였다. 그러나 태권도계에서는 이 명칭이 '태권도에서 세계적으로 뛰어난 실력과 업적을 가진 사범을 높여 이르는 말'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국기원 승단심사를 거친 9단 태권도 단증을 보유한 사람 중에서 국내외 태권도 보급에 기여하였고, 그 밖에 윤리성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부합한 조건을 갖추었을 때 태권도대사범으로 지정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허건식 체육학 박사, WMC기획경영부 부장
허건식 체육학 박사·WMC기획경영부 부장

정부의 각 부처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외에 식품명인, 농업기술명인 등을 지정하여 각 기능에 대한 보존, 계승하고자 하는 제도가 있다. '명인'이란 '어떤 분야에서 기예가 뛰어난 유명한 사람으로 단순히 특정 분야에서 기예가 뛰어난 유명한 사람을 말한다. 현재 태권도계에서 말하는 '세계적으로 뛰어난 실력과 업적을 가진 사범'으로서의 대사범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태권도법에 의한 태권도대사범 지정의 요건들을 기본적으로 검증하고 선정할 전담기관의 지정조건 및 절차 등에 관한 사항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 누구를 위한 법이고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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