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수청무어(水淸無魚)라는 말이 있다. 이는 후한서 반초전에 수지청즉무어(水至淸則無魚)라는 원말을 사자성어로 만든 것인데,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이를 통상 사람이 지나치게 바르고 허물이 없으면, 곁에 사람들이 따르지 않는다는 개인 처세의 지혜로 이해한다. 하지만 사실 '수청무어'는 단순한 개인 처세의 격언이 아니라 통치의 기술 혹은 사회구성 원리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 사자성어는 후한서를 지은 반고의 동생 반초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당시 한나라는 동아시아의 대제국이었고 서역을 복속하여 다스리고 있었다. 한나라는 이를 위해 현재의 위그루 지역에 서역도호부를 설치하고 도호(총독)을 두어 통치하였다. 반초는 이 지역에 파견된 도호였다. 반초가 수년간 성공적으로 서역을 다스리다 수도로 복귀할 즈음 반초는 후임 총독에게 '水淸無大魚'이니 사소한 일은 덮어두고 대범하게 다스리라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후임은 반초의 조언을 무시하고 엄격한 투명성을 강조하여 다스렸다가 이를 견디지 못한 서역 50여 개국의 민심을 잃었고, 결국 한나라는 서역도호부를 폐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통치의 지혜가 시대가 지나면서 개인의 처세에 대한 격언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수청무어라 하면 작은 폐해는 대충 넘어가라는 부정의한 말로 들리기도 한다. 특히 수많은 정보가 대중에게 공유되고 신뢰와 투명성이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 대한민국의 상황에서는 허물을 적당히 덮고 넘어가자는 이야기는 시대에 뒤떨어진 후한시대에나 먹힐만한 야만의 격언으로 받아들여질 법도 하다.

대한민국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 한병철씨는 그의 저서 '투명사회'(Transparenzgesellschaft)를 통해 후한시대에나 통했을 법한 수청무어 교훈의 현대적 유용성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저서에서 '투명함'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낸다는 믿음 아래 자신의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전시하다가 스스로 통제사회가 되어 개인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의 저서에 따르면 국가권력의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해지거나 기업의 자금운용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정치적·경제적으로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되고, 그 결과 사람들은 '투명성'을 통해 더 많은 정보의 자유를 누리며 더욱 강한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더 높은 경제적 효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고 한다.

하지만, 물체를 만나면 직진하지 못하는 빛과 달리 투명사회 '투명성'은 사물을 뚫고 나가는 방사선과 같다고 한다. 직진성을 잃은 빛은 화면에 외형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그림자를 만들 뿐이지만 방사선은 장애에 부딪치지 않고 똑바로 나아가 대상의 속을 화면 위에 적나라하게 보이게 만든다.

결국 정보의 자유라는 맥락에서 요구된 투명성은 점차 과잉되어 투명성 자체가 시스템이 된 사회인 투명사회를 만들고, 투명사회는 숨을 곳 없이 무차별적으로 투사되는 투명성으로 인해 서로를 신뢰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새로운 통제사회를 만든다고 한다. 무제한의 정보가 무제한적으로 공유되는 순간 우리를 둘러싼 이웃은 무제한의 감시자들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투명사회화는 개인 자유의 위축을 가지고 온다.

한국의 투명사회화는 이미 너무 많이 진행되어 있다. 판사 사찰이 문제되자 검찰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수집된 정보를 당당히 내어놓고, 국민 상당수는 이를 별것도 아니라고 인정하는 사회분위기나, 반대로 그런 검찰을 개혁하겠다며 그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법무부 장관마저 개인 휴대폰 비밀번호 강제해제 허용 법안을 공론화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는 우리사회의 투명사회화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이미 진행되었음을 보여주는 잣대가 된다.

권택인 변호사
권택인 변호사

유명해지면 은밀한 사생활이 모조리 까발려져 인격적으로 추락하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나만 아는 비밀의 공간이 없어진 세상. 흑역사를 덮지 못하는 세상. 서로가 서로를 빤히 들여다보는 어항속에 사는 세상. 실수를 할 수 밖에 없고 반성을 해야만 하는 인간들이 이렇게 수청(水淸)한 세상에서 어떻게 숨을 쉬고 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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