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로운 기운 물씬 일어나는 한 해로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2021년은 신축년 소띠해다. 소띠해는 을축(乙丑)·정축(丁丑)·기축(己丑)·신축(辛丑)·계축(癸丑)의 순으로 육십갑자에서 순환한다. 십이지의 소(丑)는 방향으로 북북동, 시간적으로는 새벽 1시에서 3시, 달로는 음력 12월을 지키는 방향신(方向神)이자 시간신(時間神)이다. 우리 조상들은 '소가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고 했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힘든 한해를 보냈으니 소띠 해는 여유와 평화의 한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본다.

#농사신 부·풍요·힘의 상징

4.소 타고 다니는 맹사성
소 타고 다니는 맹사성

농경 사회인 우리 민족에게 소는 농사일을 돕는 일하는 짐승으로, 부와 재산·힘을 상징한다.

제주도 삼성혈 신화, 고구려 고분벽화 등에서는 소가 농사신으로 인식됐다. 소를 위하는 세시풍속과 놀이에서도 소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동물로, 농가의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풍부한 노동력을 의미한다. 새해에는 풍년을 기원하며, 가을에는 한해 동안 고된 농사일에 대한 위로와 풍년을 가져오게 한데 대한 감사로 각종 풍속과 민속놀이가 행해졌다. '꿈에 황소가 자기 집으로 들어오면 부자가 된다'라는 속담이나 '소의 형국에 묏자리를 쓰면 자손이 부자가 된다'는 풍수지리설 등을 통해서 볼 때 분명 소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부의 상징으로 인식됐다.

#희생·제물·축귀의 상징
 

신라토우 (신라, 국립중앙박물관) 신라 토우의 소는 오늘날 한우가 아니라 물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신라토우 (신라, 국립중앙박물관) 신라 토우의 소는 오늘날 한우가 아니라 물소의 모습을 하고 있다.

희생에서 희(犧)와 생(牲)은 약간 다르다. 희(犧)는 소(牛)의 기운(羲)이라는 뜻이다. 제사를 지낼 때 소를 바침으로써 신으로 하여금 소의 기운을 누리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같은 소일지라도 얼룩소는 금물이었다. 곧 희(犧)는 털에 잡색이 섞이지 않은 소를 뜻한다. 한편 생(牲)은 소 중에서도 살아 있는 소(生)를 뜻한다. 그것은 소를 잡아 고기를 바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소를 바쳤다는 뜻이다. 곧 희생(犧牲)은 천지신명이나 종묘에 제사를 올릴 때 제물로 바쳤던 소를 뜻한다. 다만 암컷은 바치지 않고 튼튼하고 우람한 수컷만을 골라 바쳤다. 그런데 희생에는 소만 사용했던 것이 아니었다. 본디 삼생(三牲)이라 하여 양이나 돼지를 바치기도 했다. 다만 소가 가축의 으뜸이고 대표적인 동물이었기 때문에 우(牛) 변이 붙게 된 것이다.

#근면·우직·신성·충직의 상징

3. 김유신 묘에 새겨진 소 12지 호석 (통일신라)
3. 김유신 묘에 새겨진 소 12지 호석 (통일신라)

소의 성격은 순박하고 근면하고 우직하고 충직하다. '소같이 일한다', '소같이 벌어서', '드문드문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말은 꾸준히 일하는 소의 근면성을 칭찬한 말로 근면함을 들어 인간에게 성실함을 일깨워 주는 속담이다. 소는 비록 느리지만 인내력과 성실성이 돋보이는 근면한 동물이다. '소에게 한 말은 안 나도 아내에게 한 말은 난다'는 소의 신중함을 들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말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이슬람문화권에서 돼지, 힌두문화권에서는 소고기가 금기시 된다. 인도에서 쇠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소가 힌두교에서 신성시하는 시바신의 탈 것으로, 신성동물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의 씨성(氏性)은 고타마인데 '최상(타마)의 소(고)'란 뜻으로 미루어 소의 신성도를 가늠할 수가 있다.

소의 충직함을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조선조 후기에 상주에는 의우총이 있었다. 낙동면 사는 권씨가 집 근처에서 밭일을 하고 있는데 호랑이가 덤벼든지라 곁에서 풀을 뜯던 소가 달려들어 주인을 구하고 죽었다는 것이다. 호랑이와 싸워 주인을 구한 의로운 소는 선산 문수산 아래에서도 있어 의우비(義牛碑)를 세웠다.

#여유·한가함·평화로움의 상징

소를 생구(生口)라고 할 만큼 소중히 여겼던 우리 조상들은 소를 인격시했던 이야기가 많이 전해 오고 있다. 황희 정승이 젊은 시절에 길을 가다가 어떤 농부가 2마리 소로 밭을 가는 것을 보고 "어느 소가 더 잘 가느냐?"고 물었더니 농부가 귀엣말로 대답했고 그 이유는 "비록 짐승일지라도 사람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어 질투하지 않겠느냐?"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황희, 김시습, 맹사성 등은 소와 관련된 많은 일화를 남긴 현인들이다. 특히 조선 초기의 맹사성이 소를 타고 고향인 온양을 오르내린 이야기는 유명하다.

유교에서는 소가 의(義)의 상징으로, 불교에서는 사람의 진면목을 비유했고, 도교에서는 유유자적을 의미한다. 소는 비록 느리지만 근면함과 묵묵함은 유유자적의 여유와 한가로운 대인(大人), 은자(隱者)의 마음이라는 이미지를 수반한다. 소의 모습에는 긴장감이나 성급함을 찾아볼 수 없으며, 순박한 눈동자는 보는 이에게 평화롭고 자적한 느낌에 젖게 한다. 이러한 천성과 모습으로 인해 선비들의 취향에 각별한 영물로 인식돼 시문, 그림, 고사에 자주 등장한다.

#고집·어리석음·아둔함의 대명사

김유신 묘 12지신 소 탁본
김유신 묘 12지신 소 탁본

소는 다른 집짐승에 비해 크다. 그러면서 우직하고 고집이 세기 때문에 때로는 어리석으며, 아둔하고, 미련한 짐승으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특히 속담에 소의 고집 세고, 미련한 면을 들어 '소귀에 경읽기'니, '황소고집'이니 하는 말이 있다. 또한 몹시 둔해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나,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는 식의 우연히 공을 세웠을 경우도 소에 빗대어 말한다. '말 갈 데 소 간다'는 속담에서처럼 분별력 없는 존재로 폄하되기도 한다. '소 죽은 귀신같다', '소 같고 곰 같다'라는 속담에 이르면 소고집은 고집불통의 대명사로 사용되고, 소힘줄은 고래힘줄과 더불어 부정적인 측면에서 매우 미련하고 끈질기고 고집 센 사람으로 통용된다. 그러나 이런 우직스러운 성격은 곧 충직한 성격으로 이어진다.

천진기 전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소는 사람들에게 사람 이외에는 가장 친숙했던 동물이었고 신성시 되며 여유, 충직의 상징이 되고 있다"며 "올 한해 코로나19로 많이 힘들었지만 2021년 신축년 소띠해를 맞아 우직스러운 성격으로 코로나19도 이겨내고 여유롭고 평화로운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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