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지난 12월 30일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신이자 유학자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이 외가가 있는 충북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구룡 마을에서 탄생한지 413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암은 27세 때인 1633년에 생원에 장원급제하여 봉림대군(추후 효종)의 사부를 역임하고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한 정통관료로 사색당쟁의 주역으로 활약해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무려 3천번이나 올랐다.

송시열 선생은 동방 18현 중의 한 사람으로 공자(孔子), 주자(朱子), 정몽주, 조광조, 송익필, 이황, 이이, 조헌, 김장생, 김집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학통을 이어받아 조선 후기의 지배사상인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확립한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이다. 선생의 성리학 핵심은 직(直)과 예(禮)이다.

우암은 공자와 주자를 잇는 '송자(宋子)'로, 북벌과 예치를 국가 대의로 내걸고 시대를 이끌어간 대로(大老)로 추앙되었다. 그래서 우암은 '충청오현'으로 꼽히고 있다.

일평생 한시 860여 수와 역사적 유명인사 묘비 600편을 남겼고, 서예론과 여성교육론에도 조예가 깊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주자대전차의', '주자어류소분' 등을 들 수가 있다.

선생이 7군데 생거지, 6군데 적거지, 인생 만년에 22년간 거주하던 화양구곡에 남겨 놓은 유물과 유적은 한국과 중국의 문화관광교류를 활성화하는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대전 우암사적공원에 마련된 유물관에는 영정과 인장, 효종이 하사한 담비털옷, 글씨와 장서 등이 전시되어 찾은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시인·문학평론가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다만 선생은 서인 중에서 강경파였던 노론 세력의 중심인물로 당쟁의 화신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 초당적인 존숭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선생의 검소, 예의, 효도, 상부상조, 학문을 숭상하는 참선비적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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