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 잔] 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

코로나 때문에 크게 주목받지 못한 채 지나갔지만, 2020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기가 되는 해였다. 베토벤을 생각하면 우선 그 모습에서 '심각함'과 '진지함'이라는 단어가 떠올려진다.

베토벤 만큼은 아니지만 아는 후배 중에도 매사에 상당히 진지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젊었을 때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의 이야기인데, 취업을 하고도 며칠간은 홀에 나가지 못하고 주방에서 주전자로 컵에 물 따르는 연습만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드디어 허락이 떨어져 손님 테이블에 가서 한껏 폼을 내어 물을 따르고 주문을 받아서 돌아오는데, 그런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멋지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레스토랑에선 컵에 물을 따를 때도 주전자를 높이 들어서 하나의 퍼포먼스로 연출했다. 각자 알아서 따라 마실 수도 있었겠지만, 그땐 다들 그렇게 서비스를 해 주던 시절이었다.

다른 이야기지만,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이발소를 다니던 기억 때문인지 아직도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다. 지금은 이발사 한 분이 이발과 면도, 머리 감겨 주는 일까지 다 하시지만, 예전엔 직원이 몇 명씩 있어서 막 이발을 배우는 막내가 머리 감기는 일과 청소 등을 했다고 한다. 그것이 익숙해지면 염색, 면도같은 단계를 거쳐서 보통 2~3년이 지나야 처음 가위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머리를 감기는 일도 쉽지가 않았는데, 시원하게 감기면서도 고객의 머리가 흔들려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손가락 사이의 힘 배분에 상당히 신경을 써야 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머리 조금 흔들리는 일이 뭐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땐 그런 일들로 혼이 나고 분위기가 험악해지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손님의 머리를 깎을 수 있었으니, 가위를 잡는 일은 단 한 번에 성공해야 하는, 실수가 인정되지 않는 대단히 진지한 일이었던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진지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좋아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상황에서는 '크게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너무 엄숙한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될 때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 때로는 기분에 따라서도 판단의 기준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
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

하지만 우리는 지금 진지한 사람을 '진지충'이라고 부르며 혐오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아르바이트생이 손님에게 물 한잔 따라주는 일에도 과정이 있고 정성을 다하던 시절이, 이발사가 되어 가위를 잡고 손님 머리를 깎을 수 있게 되기까지 수년간의 견습 생활을 견뎌내야 했던 시절이, 이제는 먼 옛날의 일로 기억되겠지만, 가끔은 그런 진지함이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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